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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264작은문학관’(대구), 저항시인 이육사(李陸史)를 다시 생각하다.

by 혜강(惠江) 2022. 3. 19.

 

 

 ‘264작은문학관’ (대구) 

 

저항시인 이육사(李陸史)를 다시 생각하다.

 

글·사진 남상학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 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시로 풍요롭고 평화로운 미래 세계에 대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는 이육사의 시「청포도」이다.

  일제 강점기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이 대구 북성로에 들어섰다. 2016년, 이육사 시인의 생일(음력 4월 4일)에 맞춰 대구 중구 경상감영1길에 ‘264작은문학관’은 이육사의 형무소 수인번호(囚人番號)인 ‘264’번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264문학관은 박현수 경북대학교 교수(국어문학과)와 그의 형 박광수 씨가 사비를 들여 만들었다. 이 건물은 본래 적산 건물이었는데 이를 리모델링하여 문학관으로 만든 것이다. 중구청도 도시재생사업비로 4천만 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육사문학관(2008년 개관)이 있는 상태에서 굳이 대구에 또 다른 이육사문학관을 설립한 이유는 이육사 시인이 대구에 와서 살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육사 시인이 대구와 관련된 것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이육사 시인과 264문학관 터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이 일대는 이육사 시인이 대구에 최초로 거주한 곳이며, 사회 활동 · 기자 활동을 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04년 경북 안동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태어났다. 호적에 기록된 이름은 원록(源祿), 두 번째 이름은 원삼(源三)이었고 훗날 활(活)로 개명했다.

 

 

  12세 때인 1915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가세가 기울어지자 이육사의 가족들은 1920년경 대구로 옮겨와 당시 일본사찰인 편조원(현재 북성로 서문로교회) 인근 이육사 시인의 숙부인 이세호 씨 집에 머물렀다.

 

 

  이후 일가와 함께 남산동으로 옮겨갔고, 1923년, 19세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1925년 귀국한 이육사는 1926년에는 베이징에 있는 중국(中國)대학 상과에 입학하여 7개월 동안 공부했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서 벌어진 폭탄투척 사건에 연루돼 1년 반가량 대구형무소에 복역했다. 평생 17차례에 걸친 체포와 투옥의 시발점이었다.

  1930년 대구청년동맹 간부였던 이육사는 다시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그해 2월 『중외일보』 대구지사 기자로 임용되었지만 3월에 또다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그해 8월 『조선일보』사 대구지국으로 직장을 옮긴 그는 1931년 『조선일보』에 ‘이활’이라는 본명으로 첫 시 「말」을 발표했다. 그 뒤에도 대구격문사건을 빌미로 체포되어 두 달 동안 수감되었다가 풀려나는 등 시련이 거듭되었다. 이육사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의 죄수 번호 264번을 빌려 ‘대구이육사(大邱二六四)’라는 호를 썼다.

  1932년 3월, 조선일보사에서 나온 이육사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되고, 북경대학 등에서 사상교육을 받았다.

 

 

  1933년 국내에 잠입하여 은밀하게 항일운동을 펼치던 이육사는 ‘육사(陸史)’라는 필명으로 『신조선』에 시 「황혼」을 발표했다. 그런데 1934년 그가 군사간부학교 출신임이 밝혀지면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미 경찰은 이육사가 만주로 사라진 2년 전부터 요주의 인물로 지목하고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중국에서의 행적에 대하여 비밀을 지킨 결과 석 달 뒤인 6월 기소유예 의견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

  총칼 대신 펜으로 일제와 맞서기로 한 그는 1935년부터 이육사는 정인보가 주도하는 『신조선』사에서 일하면서 『신조선』에 7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을 걸었다.

1937년에는 신석초, 윤곤강,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하고 대표작 「청포도」, 「교목」, 「파초」〉 등 상징적이고 서정성이 풍부한 시를 발표했다. 이어서 1941년까지 「절정」, 「광인의 태양」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광야(曠野)」를 보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의 「광야」

 

  이육사의 시 「광야」에는 대한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염원하는 시어로 가득 차 있다. ‘광야’라는 광활한 공간과 현실 초월적인 시간 인식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의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는 미래 지향적인 신념을 드러낸 저항시이다.

 

 

  1945년 12월 17일 자 『자유신문』에 발표된 이 시에 대하여 평론가 김용직은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가운데 유례가 없을 정도로 든든한 구조를 가진 작품”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또, 그의 시 「절정(絶頂)」은 시대 상황과 맞서 싸우면서 겪는 치열한 갈등과 비극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초월하려는 정신적 경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육사는 평생 치열한 민족정신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잦은 옥고로 인해 몸이 쇠약해진 뒤에는 총칼 대신 날카로운 펜을 휘둘러 일제와 싸웠던 항일투사였다.

  정한모 교수는 『나라사랑』 16집 「육사 시의 특질과 시사적 의의」에서 이육사를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시는 행동이며 진정한 의미의 참여라고 한다. 그는 식민지적 압력에 대항하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대륙을 전전하며 숱한 고난과 역경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역경과 인고의 극복 노력은 기다림의 철학과 초인 의지로 승화된다. 온몸을 내던진 헌신적 투쟁의 수형(受刑) 의식으로 일제에 저항하여, 그러한 인고와 생명의 절정에서 끝없는 기다림과 초인에 대한 열망을 시로써 형상화함으로써 보다 진정한 저항 방식을 보여 준 것이다.”

  1943년부터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그는 충칭과 옌안에 가서 무기를 들여와 일제와 싸우고자 했다. 하지만 7월 초순 어머니와 형의 소상을 치르러 일시 귀국했다가 동대문경찰서 형사들에게 체포되었고, 며칠 후 베이징으로 압송된 그는 현지의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갖은 고문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이육사는 일제 강점기 활동했던 수많은 문인 가운데 끝까지 가장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의 표상이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 동생 이원조에 의해 유고집 《육사시집》 초간본이 서울출판사에서 발간되어 그의 작품 20여 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46년 육사시집 초간본(왼쪽)과 1956 발행한 육사시집

 

 264문학관은 경상감영공원 근처, 대안 성당과 대구 제일 성결교회 뒤편에 있다. 2층 규모의 근대양식 건물이다.  15평의 작은 대지 위에 전문 건축가의 멋진 솜씨로 재구성했다.

  264작은문학관은 1층은 소모임을 겸한 기획전시실과 카페가 마련되어 있고, 2층은 이육사 시인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로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또 야외공간에는 이육사와 친구들을 배경으로 포토존도 즐길 수 있다.

  문학관에는 이육사 관련 희귀본과 70여 점에 달하는 이육사 관련 자료를 두루 망라해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관 전시물의 이해를 돕는 ‘한 권에 담은 264작은문학관’ 안내 책자를 발간하여 관람객의 편의를 돕고 있다.

 

 

  전시물에는 하나의 시리얼 번호가 붙어 있는데 이육사와 관련된 에피소드와 생애 등 그에 관한 내용이 작은 소책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이육사 관련 공부에 더없는 지침이 된다.

  264작은문학관은 작지만 알찬 내용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열린 문화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누구나 신발을 벗고 편히 기대앉아서 책을 볼 수도 있고, 마음대로 음료수도 마실 수 있다.

  그냥 한번 스쳐 지나가는 문학관이 아니라 이육사 시인의 삶을 그대로 느끼고 공감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곳곳에 작은 세심함이 배어 있는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기도 하다.

 

 

 

◎상세정보

주소 : 대구 중구 경상감영1길 67-10 (북성로1가 45-16)

연락처 : 010-9731-7704

영 : 월~금 11:00 ~ 19:0 / 토 12:00~20:00 / 휴무 : 일요일

교통 : 중앙로역 4번 출구로 나와서 도보 5분 정도 거리, 자가용은 부근 유료 주차장 이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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