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23)
성전산(聖殿山, Temple Mount) - 황금사원
영적으로, 육적으로 가장 치열한 다툼이 있는 곳
글·사진 남상학
▲ 성전산 위에 상징처럼 서있는 이스람 황금사원, 솔로몬이 세운 성전터 위에 있기에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스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한 사람이면 누구나 인상적인 건물을 기억할 것이다. 성전산 위에 자리 잡은 이스람의 황금사원이다. 둥근 황금빛 지붕의 팔각형 회교 대사원이다. 돔 형태의 지붕이 황금색으로 빛나기 때문에 '황금사원'이란 이름이 붙었다. 도시 정책상 새로 건축되는 모든 건물들의 색깔을 옅은 베이지 색 돌만을 이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황금사원은 언제나 회색빛으로 젖어 있는 예루살렘을 환하게 밝혀주는 느낌을 준다.
예루살렘 성 동쪽 남부 지역에 자리 잡은 성전산은 예루살렘 성 내의 6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넓은 지역이다. 산의 높이는 해발 750m 가량 된다고 하지만 예루살렘 성 자체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산이라기보다는 약간 높은 언덕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곳을 제각기 성지로 여기는 이유는 창세기 22장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이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산이기 때문이다.(창22:2) 해발 734m의 모리아산에 바위(길이 약 18m, 폭 13m, 높이 1.2~2m)가 있는데, 이곳이 번제단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쉐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창세기22:11~19)
아브라함의 번제 사건이 있은 후 왕국시대에 이르러 다윗왕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이기도 했던 이곳을 은 50세겔을 주고 매입하였고,(삼하24:18-25). 주전 950년경에 그 아들 솔로몬왕이 두로와 히람의 도움을 얻어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제1성전)을 세웠다(역대하3:1). 그래서 이 성전산이 유대인에게는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로 여겨졌다.(왕하 25:8~9, 대하 36:19)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종교적. 정신적 그리고 민족적인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전 586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 성전은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 주전 536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 때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돌아와 폐허가 된 솔로몬의 성전위에 제2성전을 지었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이기에 이곳을 성전산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주전 37년부터 주후 4년까지 로마제국에 의해서 왕으로 세워진 헤롯왕은 주전 20년에 성전산을 2배의 넓이로 확장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지어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했던 헤롯이 성전을 다시 대폭 증축 보수를 하였기에 이를 헤롯성전이라고도 한다. 현재에도 헤롯왕이 건축한 것의 일부가 서쪽 벽 밑 부분에 남아있다. 그 후 규모와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었던 이 성전도 주후 70년 아브(Av)월 9일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다시 파괴되었다. 오늘날에도 경건한 모든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아브월 9일을 슬퍼하며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주후 638년 이스람의 칼리프 오마르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이곳은 성지 논쟁에 이스람교가 가세했다. 이스람의 오마르완은 이곳을 이슬람교도의 성지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솔로몬의 성전 터에 현재의 바위돔(the Dome of the Rock)을 세웠고, 8세기 초에는 성전산 남쪽에 칼리프 왈레드가 엘-악사 회교사원을 건축했다. 이곳은 솔로몬 왕 때의 궁전이 있던 장소라 전해지는 장소다. 이 사원 밑의 지하 건물은 고대의 아케이드로 불린다, 아름답게 장식된 기둥과 아치들이 지붕을 받쳐주며, 사원바닥은 값비싼 유탄자로 덮여 있다.
그 결과 거룩했던 하나님의 성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이슬람교 모스크가 그 자리에 서서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1099년 성전산은 십자군이 정복하여 성전산을 거룩한 장소로 여기고 무슬림의 모든 건축물을 기독교화 하면서 건물에 십자가 등을 설치하였으나, 1187년 아바시드의 지도자 살라딘, 1250년 이집트의 마믈릭왕조, 1517년 오스만 터어키에 의해 거듭 정복되면서 이곳의 이스람 건물은 더욱 보강되고, 오스만 터어키의 슐탄 술레이만 황제는 1940년 바위돔에 푸른 색 타일까지 장식했다
지금 성전산에는 이스람의 황금사원이 세워져 유대교, 기독교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데, 이슬람교도들은 마호메트가 지상의 삶을 끝내고, 백마를 타고 승천한 장소가 바로 그 곳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마호메트가 승천할 때 밟았던 마지막 발자국의 흔적까지 그 곳의 바위에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곳에 두 개의 이슬람교 대사원을 건축했고,그 곳을 ‘하람 에스 샤리프’라고 불러왔다.‘ 고귀한 성역(聖域)’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스람 교도들에게는 모하멧이 태어난 곳 메카, 모하멧의 무덤이 있는 곳 메디나와 더불어 이 곳 모리아 산을 회교의 3대 성지로 여기고 있다. 이처럼 한 장소를 놓고 세 종교가 영유권을 주장하다 보니 어찌 성지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없겠는가.
1967년 6일 전쟁 이전까지 이곳은 요르단의 영토였는데, 6일 전쟁 이후 예루살렘 지역은 이스라엘이 차지하여 모든 장소가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무슬림이 아닌 관광객이나 유대인이 성전산에 가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통로는 단 하나다. 서쪽에 있는 ‘무그라비’라 불리는 문이 그것으로, 예루살렘 성내 유대인 구역인 ‘통곡의 벽’ 광장 쪽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 벽 위가 바로 성전산이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성전산 구역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그래서 이 벽 광장 아래에서는 유대인들이 통곡하며 기도하고, 위에서는 무슬림들의 기도소리가 울려 퍼지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그나마 성전산은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이곳에서 수천에 이르는 이슬람교도들의 집회가 열리는데 이 때 일반인들은 출입이 통제된다.
우리가 성전산으로 입장하기 위해 출입구에 줄을 서 있는데. 왼쪽 다른 출입구로는 많은 사람들이 입장했다. 설명인 즉, 그 통로는 통곡의 벽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이며 우리가 선 통로는 성전산으로 입장하는 출입구인데 무슬림이나 외국인만 입장할 수 있고 유대인은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성전산 그 어느 곳에 지성소가 있어서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출입할 수 없다는 구약의 규율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라고 했다. 분쟁과 갈등이 공존하는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스람교가 자신의 성지라고 굳게 믿고 있는 곳, 이 곳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영적으로, 그리고 육적으로 가장 치열한 다툼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다윗왕이 성전산 지역을 돈을 주고 샀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윗왕의 후손이 되는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산의 소유권이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기록이 오늘날 소유권 분쟁 해결에 법적인 효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고, 아랍인들은 그런 주장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일축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계속되어 온 크고 작은 갈등의 본질은 결국 예루살렘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인 처지에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이 관리권을 행사하는 성전산 구역을 이스라엘이 좌지우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이스라엘은 자국 영토이자 수도인 예루살렘에 대한 통제권을 일부 지역이나마 아랍인들에 의해 제지당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 일부 극단적인 과격파들은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폭탄을 사용해서라도 성전산 위에 있는 두 개의 이슬람교 대사원을 폭파시키고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1000명이 훨씬 넘는다는 사실은 극히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만의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22개 아랍동맹 국가들은 물론이요, 이슬람국가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57개 국가들은 반드시 집단적으로 이스라엘에 보복공격을 가해 올 것이다. 이스라엘측은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될 수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가상의 시나리오만은 아니다.
그러나 성전산을 돌아 나오면서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성전이란 성지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성전이요, 신약의 신령한 성전인 교회로서의 성전이라는 것을. 예루살렘 성전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하여 그를 믿는 초대교회 공동체로 신령하게 변모되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고전 6:19)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19). 베드로도 그의 편지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신령한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 성전산 위의 건축물 배치도, 이 구역은 이스람의 관활권을 행사하고 있다.
*가까이서 본 성전산 모습, 성벽으로 둘러쳐 있다*
* 출입구, 통곡의 벽으로 들어가는 문(좌측)과 성전산으로 들어가는 문(우측) *
*계단을 오르며 한 컷 촬영*
* 황금사원과 분수*
*사원 건물 내부의 화려한 문양들*
*원 내부의 찬란한 문양은 이슬람 문양이다.*
*사원 앞에서 기념 촬영*
* 성전산 위의 엘 악사 이스람사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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