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 전(展)
한국화의 현대화를 위한 김기창 화백의 도전과 실험들
글·사진 남상학
►기간 : 2025. 2,18 ~ 2026. 3. 22
►장소 : 알리리오 갤러리 천안 (천안시 동남구 만남로 43-신부동 354-1), 전화 041-551-5100
알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는 한국 근대 화단의 대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화백의 작품세계 전반에 걸쳐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즉 1930년대 작업부터 후반기인 1990년대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시기별 작품들로서 이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그가 한국화의 현대화를 위해 시도한 여러 실험과 그 결과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시장 이모저모
전시장에서는 영모, 화조, 풍속화의 대표작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신앙화, 인물, 추상, 문자도, 바보산수, 청록산수 등 운보 시리즈의 대부분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광복 이후 새로운 화풍으로 실험을 본격화하면서 입체주의적 경향을 선보였던 1953-55년 작 <노점>에서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현대화를 모색하는 운보의 초창기 고민과 시도를 엿볼 수 있으며. 1970년 작 <비파도>와 1971년 작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에서는 거침없고 비범한 구도와 섬세한 표현미가 돋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운보의 다양한 작품세계
그러면 운보 김기창의 새로운 시도와 모색의 과정을 시대별로 둘러본다. 운보 김기창은 8세에 장티푸스로 인한 심한 고열로 청각이 마비되어 후천성 시각 장애인이 되었지만, 침묵의 고통을 극도로 예민한 시각적 심미성으로 발전시킨 한국화단의 화가가 되었다.
1930년 승동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마지막 왕실 화가였던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의 화숙인 이묵헌(以墨軒)에 들어가 그에게 전통 산수화와 인물화 기법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김은호에게 사사한 지 반년만인 1931년 5월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판상무도(板上跳舞)〉로 입선하였다. 이후 4회 연속 특선을 함으로써 1941년부터 추천작가가 되었으며, 1943년 함흥에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이 무렵 김기창은 사실적인 구상미술에 치중했으며, 특히 인물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의 비호를 받으며 일제의 군국주의를 찬동하는 내용의 작품을 발표하게 됨으로써 이후 그의 친일 활동이 비난을 받았다.
▲<노점>
▲ 1950년대 운보 김기창과 아내 박래현의 합동 작품 <등나무와 참새>
◎광복 이후, 한국화의 추상 가능성 시도
- <군마도>, <화조영모도>, <밤새(부엉이)> 등
광복 이후에는 1946년 여류화가 우향 박래현을 아내로 맞아 작가로서도 동반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1947년 제1회 ‘우향-운보 부부전’을 개최하였고 이를 기점으로 김기창의 화풍은 큰 변화를 보이며 새로운 화풍 실험에 주력했다. 당시 일상을 그린 풍속을 다루면서 공간을 분할하고 재조합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입체주의적 작품과 동양화도 추상 예술이라는 시대적 조류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묵담채화를 주조로 한 반추상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산으로 피난하여 《예수의 일생》 연작 시리즈 30점을 발표하였다. 이 연작은 예수와 주변 인물을 한복 차림의 한국인으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1950년대 초반에는 신앙화 시리즈로 주목을 받았다. 1950년대 후반에는 한자의 획을 자유분방한 운필로 표현하며 추상화한 문자도를 선보이며, 한국화의 추상화 가능성을 시도했다.
더불어 이 시기는 운보의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 꽃과 새, 짐승을 그린 그림)가 크게 주목을 받았다. 유명한 군마, 투계, 부엉이 등 운보의 화조영모도는 활발하고 힘이 넘치는 필력과 과감한 구도, 그리고 섬세한 표현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중 운보의 영모도를 대표하는 특유의 거침없고 역동적인 필력과 말과 부엉이, 각각의 표현에서 드러나는 기운 생동한 묘사력과 그림 전반의 긴장감이 백미인 1950-60년대 작 추정 <군마도>와 1972년 작 <밤새(부엉이)>는 특히 눈여겨볼 작품이다.
청각장애로 인해 제데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을 폭발적인 필력을 통해 그림으로 승화해내는 운보의 영모도 중 단연 수작으로 인정받는 작품들이다. 강렬한 필선을 바탕으로 붉은색과 노란색을 강조한 작품인 〈태양을 먹은 새〉(1968년)는 추상 표현 시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예수의 일생 연작시리즈 : 좌 수태고지(1952-53)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1952-53)
▲ 1972년 작 <밤새(부엉이)>
▲운보의 <화조병풍>
▲<꿩>과 <능소화와 홍조 한쌍>
▲<군마도>(1950-60년대 추정>
▲위로부터 <말>, <닭> <투계>(1960년대>, <고양이와 나비>, <다람쥐와 소나무>(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위로부터 <비파도>, <비파와 새>, <감나무>
▲위로부터 <미인도>와 <여인들>
◎1970-80년대, 산수화 전통 위에 현대적 감각을 추가
- <바보산수>, <청록산수> 연작
1970~1980년대에는 산수화 전통 위에 현대적 감각을 추가하여 ‘바보 산수’와 ‘청록산수’ 연작으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완성하였다. 1976년 갑작스럽게 아내와 사별한 후 윤보는 오랫동안 매료되었던 민화 특유의 바보스러운 해학성과 서민의 소박한 삶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방식에서영향을 받은 ‘바보산수’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바보’란 순수하고 천진한 어린아이 같은 인간 본연의 성정을 의미한다. 김기창은 ‘바보’ 연작에서 과감한 생략과 강조를 통하여 형상에 구속되지 않는 일탈과 자유를 구사하였다. 아울러 전통적인 우리 고유의 민화를 발전시켜 해학과 인간미를 전달하였다.
1980년대에는 바보 화풍이 ‘청록산수’로 전환하게 된다. ‘청록산수’ 연작 시리즈는 현대적인 한국화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기창은 여기에서 청록의 수묵담채를 구사하여 전통적인 산수화풍을 현대적 감각으로 바꾸는 데에 성공하였다. 특히 이 연작 시리즈는 회화의 순수성과 꾸밈없는 인간 본성을 표현한 것으로 김기창 특유의 자유로움과 생명력을 전달하였다는 평가와 함께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 대표작으로는 1975년 작 《새벽 종소리》, 1976년 《바보 화조》와 《청산도》, 1978년 《달밤》, 1987년 《바보 산수》와 1988년 《시집가는 날》 등이 있다.
▲<세 악사>(1976)
▲<군록>(1981)과 <바보산수-산사>(1990)
▲위:<바보산수>(1984)와 <풍류>(1976), 아래:<집>(1984)과 <청록산수>
▲<청산호반>(1981)과 <청천빨래터>(1988)
▲위:<강호>(1989)와 <산수>(1992) / 아래 : 시집 가는 날-청록산수(1988 )
▲ 좌로 부터 <정자>, <엿장수>, <연당>
▲위로부터 <청록산수1>, 청록산수수2>, <청산춘일>
▲좌로부터 <빨래터>(1989)와 <하일>(1988)
◎1990년대, 단색조의 추상화인 ‘점과 선’ 연작
마지막으로 1990년대에는 단색조의 추상화인 ‘점과 선’ 연작을 제작하였다. 이 시리즈는 대형 화선지에 점과 선을 가득 채운 기세 넘치는 수묵 추상화를 그려, 1993년 예술의 전당 팔순기념회고전 때에는 하루 1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처럼 운보는 청각장애를 극복했을 뿐만아니라 미적 승화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으로 오랫동안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창작 활동 외에도 김기창은 1973년부터 위인들의 표준영정 제작에도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우리에게 화폐 도안으로 익숙한 세종대왕 표준영정을 비롯하여 김정호, 을지문덕 등의 위인 영정을 제작하였다. 말년까지 미술계 원로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김기창은 2001년 1월 23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아내 박래현 전
그리고 이번 전시는 운보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이자 한국화의 현대화라는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고민했던 아내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 1920~1976)의 작품 일부도 소개하고 있다.
전시에 출품된 1950년대 작품 <등나무와 참새>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이 부부의 대형 합작도인 4폭 병풍 작품이다. 우향이 먼저 등나무를 그린 뒤 운보가 참새를 그리고 글을 더한 작품이다. 우향의 힘차고 시원한 붓칠과 과감한 구도, 운보의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이외에도 우향의 <불안>(1962), <작품>(1960년대)도 소개되고 있다.
▲박래현의 <망향>과 <정물>(1960년 이전
▲박래현의 <불안>과 <작품>(1960년대)
◎관람을 마치며
주요작품으로 《가을》(1934), 《복덕방》(1953), 《아악의 리듬》(1967), 《태양을 먹은 새》(1968), 《나비의 꿈》(1968), 《군마도》(1970), 《새벽 종소리》(1975), 《바보 화조》(1976), 《청산도》(1976), 《바보 산수》(1987) 등이 있고, 주요업적으로는 ‘바보 산수’와 ‘바보 화조’라는 독자적 예술 세계로 한국화의 영역 확장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망한 후인 2001년 2월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운보 김기창의 70년 작품 인생은 도전과 실험의 연속이었다. 일찍 찾아온 화단의 인정과 이후의 안정적인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했다. 작가로서 사적인 미적 탐구뿐 아니라 한국화의 현대화와 세계화라는 시대적 문제의식을 저버리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그의 다양한 작품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도전하고 실험하는 작가로서의 모습을 운보의 작품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음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타정보
요금 : 성인 3,000원 / 청소년 2,000원) / 주차 : 가능
☆ 전람회를 마치고 알라리오 조각정원에서 품격 높은 조각 작품을 둘러보자
▲알라리오 조각광장의 조각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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