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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서해

대이작도 : 다시 찾은 어머니 품 같은 섬, '섬마을 선생' 촬영지

by 혜강(惠江) 2024. 4. 28.

 

대이작도

 

다시 찾은 어머니 품 같은 섬, '섬마을 선생' 촬영지

 

글·사진 남상학

 

 

  이름만 들어도 가슴에 벅차오르는 고향 대이작도. 두 살 때 아버지가 이작분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대이작도에 들어가서 6·25 한국전쟁 중 11살까지 살았으니, 이작도는 내게 고향이나 진배없다.

  인천으로부터 44㎞ 거리, 이작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하는 작은 섬이다. 면적 2.57㎢, 해안선길이 18㎞, 최고점 162.8m이다.  옛날에는 해적들이 은거한 섬이라 하여 '이적도'라 하였다고 한다. 큰 섬인 대이작도에서  200m 정도 앞에 작은 섬 소이작도가 있다.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가는 선박은 인천에서 쾌속선 코리아피스호와 카페리인 대부고속페리호가 1일 2~4회 운행한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도 뜬다. 대이작도까지 1시간 40여 분이 소요되고, 대이작도에서 소이작도까지는 3분 정도 걸린다.

 대이작도는 전체적으로 낮은 구릉성 지형이며, 갯바위가 많아 어디에서나 낚시가 가능하다. 주민의 대부분은 반농반어로 밭농사와 연안수역에서 어업을 주로 하고 있어, 전업어민은 많지 않다. 해수욕장은 작은풀안해수욕장, 큰풀안해수욕장, 목장불해수욕장, 떼넘어(계남)해수욕장 등 네 곳이 있다. 그리고 썰물때만 드러나는 그 유명한 풀등(풀치)이 있다. 상시 운영하는 식당은 이작횟집 하나뿐 단란주점도 카페도 없다. 

  대이작도는 마을이 셋 있다. 큰마을. 장골마을, 계남마을. 선착장에서 큰마을까지가 0.7km, 가장 먼 곳인 계남마을까지라도 4km 거리이니 1박 정도를 예정한 여행객들이라면 굳이 차를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미리 민박을 예약했다면 민박집 주인이 차를 갖고 마중 나오는 경우가 많다. 피서철 같은 때에는 민박집에서 해수욕장까지 태워다 주기도 한다. 

 

▲이작도를 알리는 표지판과 환영 아치, 선착장의 등대와 어선들 

▲대이작도 관광지도(선착장에서의 거리 표시 참조)

 

  나는 이작도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10년을  살았기에 고향 같은 섬이다.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섬을 떠난 후 지금까지 여섯 번이나 방문했다. 한 번은 청년 시절 농촌 계몽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청년들과 방문하여 1주일을 체류했고, 그 후에 가족들과 두 번, 여행 동호인들과도 두 번이나 방문했다.

  이번 여섯 번째 방문에도 하트 모양의 대이작도 항구는 어머니 품처럼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선착장 옆 힐링뷰펜션(이작횟집 겸업, 010-4724-4660) 장순실 권사님과는 오랜 친분이 있어서 그곳에 짐을 풀었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믿음의 자매님이시다. 일행 중 두 분이 첫 방문이라, 장 권사님이 흔쾌하게 내어주신 승용차를 몰고 이작도의 명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로 정한 힐링뷰펜션(오른쪽 위 건물) 

 

큰마을

 

  큰마을은 선착장에서 0.7㎞ 거리에 있다. 큰마을은 대이작도의 큰마을, 장골마을 , 계남마을 세 개의 마을 중 가장 크다. 행정의 중심지로서 대이작치안센터, 옹진군청 이작출장소, 인천남부초등학교 이작분교, 대이작보건진료소, 이작교회, 이작성당 등이 있다. 

 특히, 이작분교는 내 아버님이 1950년대 교사로 근무한 학교이며, 내가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닌 모교이다.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아버지가 병환으로 사직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학교에서 초등학교를 마쳤을 것이고, 내  누이는 이작분교에서 졸업했다 그리고 내 두 동생은 대이작도에서 출생했으므로 우리 가족에게 대이작도와 이작분교는 남다른 인연이 있는 셈이다. 이 새 건물이 들어서서 옛 건물은 간 곳 없으나, 곳곳에 우리의 숨결이 스며있는 듯했다. 

  활처럼 휘어진 큰마을 해변은 바지락체험장으로 운영되며, 마을 오른쪽 해안을 따라 오형제바위 방향으로 바다생태체험로가 설치되어 해안경치를 감상하기에 좋고, 오형제바위 전망대에서는 이작도 등대와 물길 건너 소이작도의 손가락 바위가 지척이다. 

 

▲큰마을 정경, 옹진군청 이작출장소, 이작분교 

▲큰마을 오른쪽 바다생태체험로

 

부아산, 부아산 구름다리

 

  인천 남부초등학교 이작분교가 있는 큰마을을 지나 장골마을로 가는 길에 높은 고개를 넘자마자 왼편으로 크게 꺾어지는 길을 만난다. 부아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섰다. 부아산(159m)이란 이름은 마치 여인이 아기를 등에 업고 서 있는 모양과 흡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부드러운 여자산이라고도 한다.

  주차장에 도착, 목조계단을 올라가면 대이작도의 명물 구름다리가 반긴다. 부아산 구름다리는 부아산 정상에 오르기 전에 만나는 빨간색 구름다리로 대이작도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다. 푸른 숲속에 숨겨진 빨간 색이 아주 잘 어울린다. 길이가 80여m 정도.

  구름다리도 끝난 지점 부근에는 정자가 하나 세워져 전망대 겸 쉼터 구실을 해준다. 망원경도 하나 설치되어 있어 멀리 영흥도까지 조망할 수 있다. 그 옆에 봉수대를 복원해 놓은 것을 보면 대이작도가 진작부터 육지 방어에 큰 역할을 해온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아산 출렁다리, 정자, 봉수대

 

  부아산의 진짜 정상은 이 정자에서 서쪽으로 40~50m 떨어진 곳이다. 하늘을 향해 각을 세운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어 접근이 쉽지 않으나 나름대로 꽤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정상에서는 수평선 위로 멀리 덕적도가 있고, 바로 발밑으로는 소이작도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대이작도의 비경인 풀치도 여기에서 봐야 제맛이 난다. 바닷물에 잠겨 있어도 풀치가 있는 부분은 물 색깔이 달라, 어렴풋이나마 그 모습을 눈에 그려볼 수 있다.

  고개를 돌리면 대이작도의 최고봉 송이산(188m)이고, 그 뒤로 승봉도가 보인다. 부아산 주차장에서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도 또 다른 정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승봉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아산 정상으로 가는 길, 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자월도

 

  부아산을 둘러보고 다시 내려와 주차장 곁으로 올라가면  공원으로 조성한  광장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전망대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정자가 있어 한가롭게 쉴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승봉도와 사승봉도를 조망할 수 있다.  정자 옆에 썰물 때 드러나는 풀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관망 포인트를 마련해 놓았다.  

 

  ▲부아산공원의 부아정,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승봉도, 사승봉도 모습

 

장골마을, 작은풀안해수욕장

 

  부아산에서 내려오면 장골마을, 삼신할미약수터가 나온다. 이곳의 약수를 마시면 삼신할미가 아이를 점지해준다는 전설이 있다. 섬의 중간쯤에 형성된 장골마을에는 마을의 수호신처럼 장승이 서 있고, 해양생태관이 있다. 적황색 지붕의 펜션들이 들어선 장골마을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장골마을에 펜션이 많이 들어선 이유는 바로 작은풀안해수욕장 때문이다. 작은풀안해수욕장은 유난히 바닷물이 맑디맑고, 모래는 곱디곱다. 가끔 해당화나 갯완두꽃 등이 보이기도 한다. 해수욕장 왼편으로 규모가 큰 큰풀안해수욕장이 있으나 중간에 해벽이 가로막고 있어 서로 넘나들 수는 없다.

 

▲장골마을의 삼산할미약수터, 정승공원, 이작도해양생태관(시간이 없어 내부 관람을 못하고 패스)

 

▲작은풀안해수욕장 

 

  그러나 나무 데크를 따라가며 최고령 암석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이작도 곳곳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25억 1천만 년 전(선캄브리아대)에 생성된 최고령 암석이 있다. 최고령 돌은 혼합된 암석인 혼성암이라고 한다. 혼성암은 변질한 변성암 바탕에 화강암 질암이 줄무늬나 맥상으로 분포된 암석인데 수십 킬로미터 지하 깊은 곳에서 높은 압력과 열을 받아 녹았다. 굳어져서 생성됐다.

 

▲작은풀안 해변 왼쪽으로 난 생태탐방로

 

▲해안생태탐방로에서 볼 수 있는 2억 1천만년 전의 최고령 암석 

 

큰풀안해수욕장

 

  장골 마을 초입에서 큰풀안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을 일러주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큰풀안해수욕장에 도착한다. 큰풀안해수욕장은 이름 그대로 광활하다. 해변길이가 2km가 좀 넘는다. 조용한 바닷가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물이 맑고 가족 단위나 대규모 단체의 휴양과 해양활동으로 적합하다.

  큰풀안해수욕장 중간쯤에 자잘한 바위들이 깔려있는데, 이 바위를 들추면 게들이 엄청 많이 쏟아져 나온다. 썰물 때 게를 잡는 재미가 쏠쏠하여 어린아이들의 체험장으로도 적격이다. 물릴 염려가 있으니 두툼한 목장갑은 필수다.

 

▲대이작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큰풀안해수욕장' 

 

목장불해수욕장

 

  장골 마을에서 계남마을로 향하는 길 중간에 북향한 목장불해수욕장이 보인다. 남향한 다른 해수욕장들과는 달리 자갈이 다소 섞인 바닷가이다. 목장불해수욕장에선 주로 젊은이들이 마린 스포츠를 즐기는 장소로 이용된다.

  여기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면 계남마을과 계남해수욕장(일명 뛰넘어해수욕장)을 만난다. 선착장에서 반대쪽 끝부분인 계남마을까지는 총 4km다. 계남마을 부둣가의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가 바로 영화촬영의 무대였다.

 

▲또 하나의 해수욕장 목장불해수욕장

 

‘섬마을 선생’의 촬영지 계남분교, 예쁘게 단장할 날 기대

 

  계남마을은 선착장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다. 계남마을에 있는 계남분교는 영화 <섬마을 선생>의 촬영지로 유명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1960년대 중반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섬마을 선생>은 이미자의 히트곡 ‘섬마을 선생님’을 김기덕 감독이 영화한 것으로, 지금도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계남분교가 빛바랜 채로 남아있다.

  젊은 층에는 생소하지만, 장년층은 젊은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이곳에서 어쩌면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총각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폐교된 학교의 정문 입구에는 조릿대가 무성하고 그 그늘 사이로 '자월국민학교 계남분교장'이라는 간판은 그대로 남아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손바닥만 한 운동장은 염소의 놀이터가 되어버렸고 학교 건물 안을 들여다보면, 오선지가 그려진 칠판과 몇 개의 의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소파 등이 부서진 채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이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대신 들려준다.

  잡풀로 뒤덮인 운동장 끝부분에 한국영상자료원 등에서 만든 '섬마을 선생 촬영장소'(김기덕 감독이 연출하고 문희, 오영일, 이낙훈, 김희갑 등이 출연) 기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영화촬영 무대였음을 알려 주는 표지석이다.

  이왕 촬영장소라고 관광지로 홍보할 것이라면, 흉물처럼 풀숲에 방치할 것이 아니라 말끔하게 단장하여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대로 둔다면 예쁜 마을과도 어울리지 않음)

 

▲영화 <섬마을 선생> 촬영지인 계남마을

▲영화 <섬마을 선생>의 촬영 무대가 된 계남분교 (퇴락한 채 방치되어 있다)

 

  학교 앞 계남해변은 바로 앞에 사승봉도가 남쪽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고 있기에, 큰풀안이나 작은풀안 해변보다 물결이 잔잔한 편이고, 선착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조용히 여름 정취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마을 우측 해변을 따라 목제 데크가 설치되어 계남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해양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데크를 따라가는 길옆으로 보리수나무들이 우거져 볼거리를 더해 준다.

 

▲평화로운 계남해변

▲계남해변 우측으로 설치한 해안데크 길

 

대이작도의 명물, 풀등

 

  대이작도의 명물인 풀등(일명 풀치)은 밀물 때면 바닷속에 잠겼다가,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대형 은빛모래 섬이다. 바다 한 가운데서 만나는 모래섬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랍다.

  서울 여의도 면적보다 크다. 풀등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 밀물이 되면 풀등은 이내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서해안의 해변 대부분이 그러하듯 날로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풀등의 모습은 부아산이나 송이산에서 가장 잘 보인다.  여름 피서철에는 대이작도 선착장에서 정기적으로 풀등까지 왕복 운행하는 배가 등장한다. 선착장에서 10~15분 정도 소요되며 소정의 값을 지급하면 된다.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명물인 풀등=풀치(가져온 사진)

 

이작교회에서의 수요예배

 

  대이작도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가장 뜻깊었던 일은 이작교회의 수요예배에 참가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대이작도 어느 가정집에서 대이작도를 찾아온 한 여전도자(女傳道者)로부터 어머니, 누나와 함께 기독교 복음을 접했다.

  그 후 나는 어머니에게 이끌려 가정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섬을 떠난 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 가정교회가 이작교회의 전신일 것이 분명하다면, 이작교회야말로 내게는 신앙을 갖게 한 모교회(母敎會)가 아닌가? 이런 생각에 교회 문턱을 넘는 순간 저절로 감동이 왔다. 

  장순실 권사님과 함께 참석한 예배는 우리 일행 네 명을 제외하고 여섯 명이었고, 예배는 담임목사님이신 박승로 목사님이 미국에 출장 중이어서 유명순 사모님이 예배를 인도하셨다. 잠언서 석 장을 성도들과 함께 교독하면서 해설해 주신 예배는 참으로 은혜로웠다.

  30~4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교회 내부는 깔끔했고, 찬양대 좌석에 피아노 등 시설 역시 손색이 없어 보였다. 교회를 이렇게 가꾸기까지 성도들의 헌신이 얼마나 컸을까?  예배 후 사모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나오면서, 나는 이작교회가 더욱 성장하여 영혼 구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깔끔하게 단장된 이작교회  모습 (수양관까지 갖췄다.) 

▲ 이작교회를 섬기는 장순실 권사님, (권사님은 식당 경영, 펜션 운영, 밭 농사, 갯일, 집안 일 등   1인 5역을 하면서도 교회 가는 날은  설레고 흥분이 된다고 하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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