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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이스라엘(해외성지)

마가의 다락방,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자리

by 혜강(惠江) 2009. 7. 30.

 

성지순례(32) : 마가의 다락방 


마가의 다락방,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자리


 
-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신 곳 -

 

글·사진 남상학

 

* 마가의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길 *
  

  마가의 다락방은 시온산 언덕에 있다. 예루살렘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미문 등 여러 문이 있었는데 시온문으로 빠져나와 남쪽으로 20여m 가까운 거리에 있다. 좌측 2층 석조 건물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약 70~80평 정도 되는 곳이다.

  기독교에서는 이곳을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여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그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던 곳이며(눅22:12-13, 요한 13:4~15), 오순절날 제자들이 120명의 성도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했던 곳이고, 이 사건을 계기로 신약 시대의 최초의 교회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3장 1~11절에 보면, 수난주간 목요일 밤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마지막 성만찬(마 26:14~29)을 베풀면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 직전에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높으냐"는 논쟁을 하고 있었다.(눅 22:24~34)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지극한 사랑과 겸손을 보여 주셨고, 그를 다르는 자들도 이같이 사랑과 겸손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마가 14:22~24)

  예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에 비유하시며 자신의 희생을 예고하셨다. 이는 자신이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대속의 죽임을 당할 것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의 승천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과 무리들이 그 이전에 상호 경쟁하던 용렬한 태도를 떨쳐버리고 한 자리에 모여 성령 강림을 기다리며 함께 모여 기도한 곳이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사도행전 1:12~14 )

  그 결과, 오순절 날 성령 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다. 사도행전 2장 1절~4절에 이랗게 기록하고 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본문은 이날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셨고(요 15:26) 구약에서도 예언(요엘 2:28~32)했던 성령 강림 예언이 성취죈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제자들은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 세계를 향하여 전파시키는 전도자가 되었고, 교회의 시작을 열게 되었다.

  마가의 다락방은 지붕에다 만든 2층 방으로 당대에 빈번했던 건축 양식이었다. 통상적인 생활공간보다 시원하기 때문에 여름에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한국의 한옥 구조에서 2층은 생소한 것이어서 다락방 정도로 번역한 모양이다. 한국적 사고방식에 따라 왜소하고 궁색한 장소가 아니었다. 거의 100~1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아치형 돔 형태의 건물로 널찍한 공간이었다.

   본래 마가의 다락방 건물은 비잔틴 시대에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하지만 그 때의 건물은 한때 이스람 사원으로 쓰이다가 폐허가 되었고, 그 후 1333년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고딕식 건축 양식을 한 기념건물을 지었는데, 이 건물이 오늘날 우리가 방문하는 곳이다.
  

  내부는 아무런 장식이 없어서 조금은 썰렁하다는 느낌이었으나, 울림이 좋아서 이곳에서 찬양을 하면 소리가 웅장하게 잘 퍼진다고 한다.  성지순례를 온 한국인들이 단골로 찬양을 드리는 곳인데, 최근에는 다른 순례객들에게 불편을 주기 때문에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고 한다.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지극한 겸손과 사랑을 보여주었던 주님,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과 나눔으로써 자신의 희생적 죽음이 인류 구원을 위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그 주님, 그 주님은 이미 예언하셨던 성령 강림의 예언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취시킴으로써 이 사건을 계기로 복음을 전 세계로 전파시키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숙연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님은 지금도 성만찬 석상에서 하신 말씀 - 겸손으로 서로 섬길 것과 복음을 위해 충성할 것을 당부하신 말씀(눅 22:23~38)-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계실 것을 생각하며 마음속에 새롭게 다짐해 본다.

 

* 다락방으로 들어가는 길(상), 왼쪽 2층 건물이 다락방(중), 다락방 창문(하) *

*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 

 * 다락방 내부 구조 및 기둥 *
 

* 우리는 다락방에서 나와서 찬양을 부르고 서로 축복해 주며 기념촬영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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