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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남원 혼불문학관, 치열했던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찾아가는 길

by 혜강(惠江) 2022. 2. 22.

 

 

남원 혼불문학관

 

치열했던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찾아가는 길

 

 

글·사진 남상학

 

 

 

 

 

  전북 남원은 이야기로 풍성한 고장이다. 숱한 우리 고전이 이 땅에서 태어났다. 시내 한복판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무대, 남원시 아영면 성리와 동면 성산리 일대는 『흥부전』의 발생지로 통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은 1880년대 최명희가 쓴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지답게 곡진한 이야기와 느긋한 풍경을 품고 있다. 실제로 이곳은 최명희(崔明姬, 1947~1998)의 고향이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청암 부인의 생가가 있다. 오늘은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찾아 남원으로 향했다.

 

  노봉마을은 최명희 작가의 선조들이 이미 500년 전부터 살아온 곳이다. 주변에는 『혼불』에 등장하는 노봉서원, 청호저수지, 새암바위, 호성암, 노적봉 마이애불상, 달맞이동산, 서도역, 근심바위, 늦바위고개, 당골네 집, 홍송 숲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노봉마을 입구에는 '꽃심을 지닌 땅', '아소 님하'를 새긴 한 쌍의 장승이 나란히 세워져 있고, 노봉마을 입구에는 서도역이 있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이 시작되는 장면으로 잘 알려진 구 서도역은 전라선 기차역이었다. 1934년에 역무원 배치를 시작해서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로 역사(驛舍)를 신축 이전했던 서도역이 차츰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가 폐역이 된 것은 10여 년 전 일이다.

 

  1930년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 있는 목조건물과 역전 마당 가장자리의 우람한 느티나무, 기찻길 가장자리에 늘어선 나무들이 구 서도역이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둔 채 그 자리를 지킨 덕에 문학적 공간으로 남게 되어 철길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기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두 채의 아담한 한옥집, 혼불문학관

 

  혼불문학관은 구 서도역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이곳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1940년대 몰락해가는 남원의 양반가 종부 3대(代)와 그들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2004년 문을 연 혼불문학관은 보절면 천왕산과 성수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뒤편으로는 노적봉이 굽어보고 있고, 바로 옆에는 청호저수지와 자그마한 야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문학관 입구에는 실개펀이 흐르고 물레방아가 옛 정취를 드러내고, 돌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잔디마당이다. 잔디밭에는 『혼불』 본문 중에 나오는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 ; 일천 번의 가을 동안 즐겁고, 일만 년의 세월 동안 복을 누린다)’는 글귀가 새겨진 기념석과 관상용 소나무가 방문객의 눈길을 이끈다.

 

 

 

 

“서북으로 비켜 기맥이 흐를 염려가 놓였으니, 마을 서북 쪽으로 흘러내리는 노적봉과 여솔봉의 산자락 기운을 느긋하게 잡아 묶어서, 큰 못을 따고 그 기맥을 가두어 찰랑찰랑 넘치게 방비책만 잘 강구한다면 가히 백대천손의 천추락만세향을 누릴 만한 곳이다 하고 이르셨다.”

 

  잔디마당 끝에는 누각이 자리를 잡았다. 누각에는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남긴 글들이 걸려 있다. 문학관 뒤편에 자리한 혼불 아우름 공원에는 휴게시설과 그네장, 혼불 산책길 등이 조성돼 있다.

 

 

 

 

  혼불문학관은 전시관과 꽃심관 등 두 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학관으로 손꼽힌다. 문학관은 작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이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이자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통문화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작가의 집필실을 재현한 공간과 유품, 당시의 풍속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영상시설 등이 마련돼 있다.

 

 

●집필실을 재현한 공간 유품전시관

 

  약 6,000평의 문학관 내부에는 작가의 생전의 모습이 군데군데서 맞는다. 실내를 빙 돌다 보면 소설 속의 장면들을 디테일한 사진이나 모형으로 전시된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들여놓게 한다.

 

  작가의 사진과 ‘최명희 혼불’이라 쓴 자필 글씨, 작가의 손때 묻은 원고, 생전에 작가가 사용한 만년필과 잉크병, 꼼꼼하게 정리된 작가의 취재 수첩과 자료집 등이 전시되어 있어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면서 숙연해진다.

 

  그리고 작가와 친분이 있는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도 어느덧 누렇게 색이 바래기는 채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생전 모습, 수상경력,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을 때부터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혼불』의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혼불』 이야기

 

  5부 10권으로 구성된 『혼불』의 시작은 작가 최명희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된 그 이듬해인 1981년이다.

 

  그는 등단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 「혼불」 제1부를 응모해 당선되었고, 이후 1988~95년 월간 『신동아』에 제2~5부를 연재했다. 1996년에는 제1~5부를 전 10권으로 묶어 완간했는데, 발간 보름 만에 1만 질 10만 권의 책이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초 전라북도 남원을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종가(宗家)의 종부(宗婦) 청암부인, 율촌댁, 효원 3대가 겪는 삶의 역정을 그려냈다. 전반부가 청암부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후반부는 손자 강모와 효원, 그리고 양반가의 땅을 부치며 사는 거멍골 사람들과 중인, 상민의 신산한 삶이 축을 이룬다.

 

  대부분의 대하소설이 역사적 사건의 추이를 더듬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의 세시풍속·무속신앙·관혼상제·관제·직제·신분제도·의상·가구·침선·음식·풍수 등 당대의 습속과 풍물·가치를 눈에 잡힐 듯 환하고 꼼꼼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는 작품 창작에 앞서 무려 17년 동안 오롯이 이 한 작품에 공을 기울였다. 작품의 주요 무대가 된 중국 동북지방과 선양, 무단강 유역을 돌아다니며 조선족을 만나 취재한 1994년 64일간의 장정은 그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암에 걸려 몇 차례 혼절을 거듭하면서도 원고지 1만 2,000매 분량에 이르는 이 작품의 집필과 수정·보완 작업을 매듭지었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방대한 고증과 치밀하고 섬세한 언어 구성, 생기 넘치는 인물 묘사로 우리 민족혼의 원형을 빚어냈다.'라고 극찬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지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분량을 쓰기까지 얼마나 힘이 드는 작업이었는지 충분히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녀는 3차례의 수술과 2년여 투병 생활 중에도 제6~7부의 집필 계획에 골몰할 만큼 강인했다고 한다. 작품 완간 1개월 뒤 기어코 쓰러져 입원해야 했다.

 

  20세기 말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 작품은 17년간 혼신을 바친 결과이다. 그리고 2년 뒤 그녀는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작가의 방

 

  작가의 방은 작가의 집필방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소설 속 주요 장면을 입체 모형으로 재현한 디오라마(diorama) 10점과 소설 『혼불』을 소개하는 매직 비전, 인월댁 베 짜기 시설 등이 전시되어 있다.

 

  디오라마는 혼례식, 강모와 강실 소꿉놀이, 액막이 연날리기, 효원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서 그 정기를 빨아들이는 흡월(吸月), 청암부인 장례식, 춘복이 달맞이 장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꽃심관

 

  문학관 건너편의 ‘꽃심관’이라는 한옥 쉼터에는 사랑실과 누마루 ‘소살소살’이 있어 문학관을 찾는 이에게 공부방 혹은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건물 모퉁이의 정자에 올라 혼불문학관을 바라보며 소설 속 삶의 한 자락을 느껴볼 만하다. 살아생전 우리말을 사랑하던 작가 최명희 작가의 혼불. 작품의 어휘 하나하나 직접 취재하고 토속어를 찾아서 우리 문화의 정신을 문학 속에서 형상화했다고 한다.

 

  문학관을 둘러보고 문학관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청호저수지 주변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울타리처럼 둘러있는 솟대들은 길게 목을 빼고 노봉마을을 건너다보는 듯하다.

 

 

 

 

◎상세정보

 

►주소 : 전북 남원시 사매면 노봉안길 52 (사매면 서도리 522)

►전화 : 063-620-5744

►운영 : 월-금 09:00~17:30 (여름철 18:00) / 토~일 09:00~17:00

►휴무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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