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회진면
이청준, 한승원의 문학적 자취 따라 봄나들이
청년 한승원이 걸었고…이청준이 먼 길 떠난 곳
장흥=글ㆍ사진 최흥수기자

▲남도 끝자락, 장흥 회진면 진목리 이청준의 묘소인 ‘이청준 문학자리’. 광주 가는 아들 주려고 게를 잡던 갯벌은 지금 드넓은 ‘갯나들’로 변해 보리와 사료작물로 초록이 물결친다. 장흥=최흥수기자
정남진은 없다. 요즘에야 강릉 정동진만큼 제법 익숙해졌지만, 장흥 어디가 정남진인지는 콕 찍어 말하기 어렵다. 광화문과 경도가 같은 한반도의 가장 남쪽 땅, 그러니까 정남진은 다분히 서울 사람들을 의식한 명칭이다. 2005년 남도 끝자락 외진 곳 장흥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고안해 ‘정남진물축제’ ‘정남진전망대’ ‘정남진 편백숲우드랜드’ 등 관광 브랜드로 주로 사용된다. 그래도 장흥에서 정남진을 꼽으라면 가장 남쪽 회진면이다. 눈에 번쩍 띄는 관광지는 없지만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따라 가다 한적한 바닷가에 자리를 펴면 어디나 봄날의 소풍이다.

▲정남진 장흥 회진면의 한승원ㆍ이청준 문학 자리와 천관산 자락 주요 관광지. 그래픽=송정근 기자
◇정남진 이전에 회령포, 백의종군 이순신의 부활
득량만 끄트머리에서 바닷물이 천관산 자락으로 파고드는 작은 포구, 회진의 옛 이름은 회령포다. 조선시대에는 종4품 무관인 수군만호(水軍萬戶)가 다스리던 해군기지가 있었다. 언덕 위에 포구보다 작고 아담한 석성, 회령진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성종 21년(1490)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쌓았다.
전쟁 시에는 수군의 집결 장소로, 평시에는 군량과 군기를 쌓아두는 보급 기지였다. 전체 616m의 성벽 중 현재 북문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일부만 복원해 놓았다. 성곽에서 내려다보면 남쪽으로는 득량만의 쪽빛 바다가 반짝이고, 북쪽으로는 천관산이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포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마을 풍경이 정겹고도 푸근하다.

.▲이순신이 명량해전 출정식을 한 회진면 회령진성. 건너편이 파손된 12척의 판옥선을 수리한 덕도(덕산마을)이다

▲회령진성은 북문 터 일부 구간만 공원처럼 복원한 상태다.
회령포는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삼군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후 공식 취임한 곳이다. 원균이 거제 칠천량해전에서 패한 후 당시 경상우수사 배설이 부서진 배 12척을 이끌고 이곳으로 피신했다. 마을에 ‘고집(庫集)들’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배를 숨겨 놓은 곳이라는 뜻이다.

.▲회령진성이 있는 회진면 소재지 뒤편으로 천관산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고갯길에 정겨운 할미꽃…한승원 생가 가는 길
회진은 문인의 고향이다. 소설가 한강의 부친으로 더 잘 알려진 작가 한승원(1939년생)과 ‘당신들의 천국’ ‘눈길’ 등의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한승원이 태어난 곳은 회진면 소재지에서 북측, 이청준의 생가는 남측이다. ‘한승원 문학길’ ‘이청준 문학길’이라 이름 붙인 걷기 길이 있지만,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짧지 않은 거리다. 천천히 차를 몰다 한적한 곳에서 쉬어 가도 문학의 향기를 음미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 ▲회진에서 한승원 생가가 있는 신상마을로 가는 고갯길, 한재공원에 할미꽃이 곱게 피었다
▲2년 전 산불이 난 이듬해 할미꽃이 무더기로 올라오자 아예 할미꽃 공원으로 가꿨다.
한승원 생가는 회령진성에서 바라보이는 덕산마을에서 고개를 하나 넘어 신상마을이다. 두 마을을 잇는 한재 고갯마루에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시설을 잔뜩 해 놓고 돈 받는 공원이 아니라 주민들이 아픈 다리 쉬어 가는 동네 공원이다. 고개 정상에 ‘한재’를 추억하는 한승원의 글이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한식 지내러 왔다가 한재고개 언덕지 풀밭에 엉덩이 붙이고 앉는다. 고살바위 주위로 진달래꽃이 불처럼 타오른다. 동무들과 자치기하고 씨름하다가 회진 뒷산에 핏빛 노을이 지면 풍경 뎅그렁거리는 소 끌고 집으로 돌아가 팥죽 먹던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나 벌써 강 하구에 흘러와 있다.”
요즘 한재공원은 할미꽃공원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여년 전 산불이 난 후 이듬해 봄에 할미꽃이 잔뜩 피어 났다. 이를 본 주민들이 아예 주변 잡목을 제거하고 할미꽃을 더 심어 가꿨다. 손톱만한 봄 꽃에 비하면 할미꽃은 제법 큰 편이지만, 그 고운 자체를 보려면 여전히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눈을 맞춰야 한다. 고개 숙인 채 솜털이 보송보송한 진보랏빛 꽃잎이 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회진면 신상마을의 한승원 생가. 현재는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신상마을에서 언덕 너머 득량만 바닷가의 ‘한승원현장문학비’. 파도에 떠 내려 온 것처럼 ‘현장감’을 살렸다.
◇따스한 봄 소풍처럼…‘이청준 문학자리’
◇장흥 여행 정보
▦서울에서 장흥 회진까지는 대략 400km 거리다. 정체가 없어도 5시간은 넘게 걸린다. 서울 강남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장흥까지 하루 7회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장흥읍내에서 회진면까지는 시내버스(농어촌버스)를 이용해야 하지만 차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나주역(혹은 광주송정역)까지 고속철로 이동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이다.
▦장흥은 언제나 먹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지역 특산물인 쇠고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익혀서 함께 먹는 ‘장흥삼합’은 대표 음식이다. 요즘은 회진면 삭금 앞바다에서 잡히는 주꾸미가 살이 올랐다. 미나리와 냉이를 듬뿍 넣어 국물 맛을 낸 주꾸미 샤브샤브도 제철 음식이다.
<출처> 2019. 3. 27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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