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및 정보/- 요르단, 중동

요르단, 호르산과 므리바 샘이 주는 교훈

by 혜강(惠江) 2009. 8. 17.

 

성지순례 (49)  : 호르 산과 므리바 샘

호르산과 므리바 샘이 주는 교훈

 

 글·사진 남상학

 

* 호르 산 정상, 아론의 무덤 사원(교회) 

    엊저녁, 이집트 타바 국경을 넘어 요르단의 아카바에 오기까지 우리 일행이 출국과 입국 과정에 걸쳐 마치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스릴을 겪었기에 아카바에 와서는 골아 떨어질 정도로 깊은 잠을 잤다. 항상 모닝콜 이전에 잠을 깨던 것도 이날만은 아니었다.

  세면을 끝내고 식당으로 가기 위해 프론트 쪽으로 내려오니 데스크에서 웃으며 ‘사바하 알헤르’라고 인사를 한다. 요르단의 아침 인사인가 보다. 여행 중 호텔에서 별로 인사를 받아보지 못했는데 뜻밖이었다. 한 마디 말에 요르단 사람들의 친절함이 묻어난다.

  아카바에서부터 이틀 동안 요르단 안에 있는 성지를 둘러보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요르단은 성서에서 볼 때 요단강 동편 지역으로 구약 시대에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이 살던 땅이다. 암몬 족속은 지금의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중심으로 요르단 중북부를 중심으로 살고 있었고, 모압 족속은 지금의 요르단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살던 민족이다. 모압 족속은  남쪽으로는 세렛강, 북쪽으로는 아르논강을 경계로 삼아 살고 있었는데, 따라서 아르논 강은 암몬 족속의 남쪽 경계가 되기도 한다.

  요르단의 성지로는 바위 지역인 페트라, 와디 롬, 모압족의 수도였던 길하레셋(Kir-Hareseth, 지금의 케락(Kerak) 성 ),  세례요한이 죽은 마케루스 요새, 모세가 죽은 느보산, 메드바 교회와 교회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 지도, 요단강 하류 헤스본,  우리아 장군이 죽은 랍바(암만) 성, 야곱이 건넌 브니엘과 근처의 얍복강, 그 외에도 찾아볼 곳들이 많으나, 모든 성지순례단의 일정이 그러하듯 허락되는 시간에 따라 선별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출발하는 아카바는 고대의 에시온 게벨에 해당하는 곳으로,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에시온 게벨은 출애굽 여정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쳤던 지역이며, 고대에는 <왕의 대로>가 연결되는 교통로로 이용되었고, 로마시대 때는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와 암만, 페트라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건설되어 이 길을 통하여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오가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는 첫 행선지 페트라로 가기 위해 왕의 대로로 달렸다. 왕의 대로는 아카바만이 위치한 에시온게벨에서 출발하여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까지 연결된 도로이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에시온게벨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모압을 통과하고 거기서 시혼 왕의 아모리 땅을 지나 암몬 왕국의 변경과 접하고 옥(바산) 왕국을 지나 아람 혹은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까지 뻗어 있다.  

 

*노란 선이 '왕의 대로' 임


  우선 민수기 20: 14-21절에는 왕의 대로 통행문제를 놓고 모세와 에돔왕 간의 협상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가데스에 진을 치고 있었던 모세는 사자를 에돔 왕에게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의 대로로의 통행을 공식적으로 그리고 정중하게 요청한다. 왕의 대로를 통과하되 밭이나 포도원으로는 지나가지 않고 물도 공짜로 마시지 않을 것이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앞으로만 가겠다고 약속한다. 만일 이스라엘의 가축들이 에돔의 물을 마신다면 그 값을 치를 것이고, 손해를 입혔을 경우에도 반드시 배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에돔의 왕은 모세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에돔의 서쪽 변경을 따라 올라가다가 세렛 시내에서 동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모압의 변경을 끼고 다시 북상했다. 여기서 잠시 구약시대의 요르단에 대하여 박준서 박사의 글로 살펴본다.

"오늘날의 요르단은 구약시대에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요단강 동편의 '암몬'지역, 사해 동쪽의 '모압'지역, 그리고 사해 남쪽의 '에돔'지역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이들 세 지역 주민들의 혈통에 관해서 흥미있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조카 '롯'이 있었다. 롯에 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이들이 낳은 아들이 각각 암몬과 모압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있었다. 형인 에서는 '에돔'족의 조상, 동생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구약성경은 오늘날 요르단의 원주민들인 암몬, 모압, 에돔족이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과 혈연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이스라엘을 제외할 때 성경에서 가장 자주 언급하는 지역이 요르단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 중에 무려 96곳이 오늘날 요르단 지역에 있다. 효성의 귀감이 되는 여인 '룻'의 고향도 요르단에 있고,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올라가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았던 '느보'산도 이곳에 있다. 야곱이 밤새도록 씨름했다는 '얍복강'도 이 땅을 흐르고, 다윗왕이 함락시켰던 암몬족의 도성 '랍바'는 바로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 '암만'이다. 예수께서 두 명의 정신병자를 고쳐주신 '가다라'는 오늘날 '움 케이스'(Um Qais)라는 이름으로 요르단에 있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요르단에 있다. 따 라서 이곳은 성서 세계의 탐방에서는 반드시 들러야 할 중요한 곳이다. "

  북상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모리족의 시혼 왕국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는 다시 사자를 보내 왕의 대로의 통과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한다.(민21:21-32). 그런데 시혼 왕은 모세의 제의를 거절할 뿐만 아니라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치러 나왔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초의 주요한 군사적 전쟁이었던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암몬 땅 아모리 왕국의 전체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줄이야!

  최초로 군사적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북진하여 엄청나게 크고 단단한 침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소문난 옥(Og)이라는 이름의 바산 왕을 만나 전투를 벌인 결과 거기서도 승리를 쟁취하였다. 결국 이 전쟁의 승리로 왕의 대로도 일정 부분 이스라엘이 소유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부귀영화를 누렸던 시대는 솔로몬 시대라 할 수 있다. 솔로몬 시대의 풍요를 가능케 했던 요인은 몇 가지가 있다. 즉 백성들의 세금징수와 여러 나라들로부터 받은 조공이 있었고, 그리고 통행세를 통한 수입원이다. 주요 통행세 수입원의 발판이 되었던 것이 바로 “왕의 대로”이다.

 

*  페트라는 왕의 대로를 통해 북상하면 된다 

* '왕의 대로'는 척박한 땅으로 계속 이어지고 산등성이에 무덤도 보인다.

* '모세의 계곡'이란 뜻의 '와디무사' 마을의 윗자락 

아론의 무덤이 있는 호르 산

   얼마를 달렸을까?  왕의 대로에서 벗어나 페트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어지는 바위산들이 멀리 보였다. 정향현 자매가 열심히 설명해 준다.  “저 건너편에 있는 바위산들 중에서 지금 햇볕을 받고 있는 제일 높은 산이 호르산입니다. 높이가 해발 1593m로 모세의 형 아론이 죽은 곳이어서 이곳 사람들은 아론의 산이라고 하지요. 산꼭대기에 있는 아론의 무덤에는 비잔틴 시대에는 돔형의 건물과 오벨리스크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스크 형태의 기념교회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성서에는 아론의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산에 올라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과 함께 회중의 목전에서 호르산에 오르니라.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의 죽은 것을 보고 그를 위하여 삼십일 동안 애곡하였더라.(민 20:25-29)”

  가데스에서 광야로 들어간 출애굽 여정 38년간의 생활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는다. 다만 출애굽 후 40년 5월 1일 에돔 국경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었음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 호르산은 오늘날 페트라의 꼭대기에 있는 해발 1,593m의 ‘자발 하룬’(아론의 산)에 해당한다.

 페트라 내의 박물관 아래에 있는 제벨 하비스의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페트라 꼭대기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성경의 호르산으로 현지 지명으로는 '아론의 산' 이라는 의미의 '자발 하룬' 이라 불린다. 아론을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서는 하룬으로 부른다. 산꼭대기의 아론 무덤에는 비잔틴 시대에는 돔형의 건물과 오벨리스크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스크 형태의 건물이 남아 있다.  정상에 아론 기념 교회가 있다.

  바위산들의 풍경은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툭툭 불거진 산세는 여기저기에서 꿈틀꿈틀 용틀임이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설명이 이어지는 사이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들은 하얀 콘크리트 건축으로 미완성인 어설픈 이집트 가옥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을 주변에는 올리브 나무와 그 밖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마을이 한결 정겹게 느껴졌다.

 

* 아론의 무덤이 있는 호르 산이 멀리 보인다.

* 페트라로 들어가는 길목, 바위산의 모습들

모세의 샘-므리바 샘


  “이곳 와디무사 마을에서 므리바 샘(모세의 샘)에 잠시 들렀다 가겠습니다.” 길가에 몇 채의 집들이 서있기는 했지만 주변은 온통 깡마른 바위산들뿐이어서 그 어느 곳에서도 샘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은데, 모세의 샘이라니~  호기심을 가지고 버스에서 내려서니 길가 바위 언덕 아래  세 개의 하얀 돔 지붕을 한 건물이 보였다. 모세의 샘 옆에는 모세가 내리쳤다는 바위가 있다.

  시멘트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정말 도저히 믿기지 않는 풍경이 펼쳐졌다. 물줄기는 돌로 잘 다듬어진 수로를 따라 콸콸 흐르고 있었다. 수량도 제법 많았다. 우리보다 앞서 온 사람들이 무릎 정도 아래에 있는 발판으로 내려가 위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커다란 플라스틱 물통에 담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손으로 떠올려 마시고 있었다.

  물이 맑고 깨끗하여 정수나 여과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마신다고 했다. 또 이 물은 1년 내내 솟는다고 한다. 이 물은 고대도시 페트라의 식수원이었는데, 로마는 이 물줄기를 끊어 페트라를 정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 흐르던 물이 오늘도 변함없이 깨끗한 상태로 흐르고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 물이 바로 이집트에서 모세에 이끌려 나온 유대인들이 마실 물이 없다고 투정을 했을 때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려치자 솟아올랐던 바로 그 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모세의 샘’이라고 부르지요.” (민 20: 1~13)

  성서의 기록을 보면, 결국 모세와 아론은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라”는 여호와의 말을 거역하고 백성에게 혈기를 못 이겨 화를 내며 지팡이로 바위를 침으로써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큰 벌을 받게 된 것이다.(민 20: 22~24)

  모세와 아론이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고 그 역사를 자신들에게 돌림으로 먼저 아론은 흐르산에서 죽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30일은 아론을 위하여 애곡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가장 경계하여야 할 죄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자신에게 돌림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위대한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아니하면 인간 본성에 사로잡혀 실수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도 되는 것이다. 아울러 인간의 행위나 공로로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므리바 샘이 있는 건물, 가운데는 천정 돔 지붕

* 깨끗한 물이 콸콸 솟아나는 므리바 샘물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