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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융건릉 · 용주사에서 제부도·국화도·입파도까지

혜강(惠江) 2024. 5. 15. 09:58

 

화성 가볼 만한 곳 총정리

 

융건릉 · 용주사에서 제부도·국화도·입파도까지

 

글·사진 남상학

 

 

 

  경기도 화성은 정조와 그의 부모(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의 무덤과 용주사가 있으며, 천주교와 기독교의 성지인 남양성모성지, 제암리3·1운동기념유적지가 있으며, 많은 관광객에게 사랑을 받는 제부도, 국화도, 입파도를 거느리고 있다. 역사적 향기와 바다 향기를 찾아 떠나보자.

►융건릉/용주사 /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 화성독립운동기념관 / 남이장군 묘 / 남양향교 / 남양 성모성지 / 홍난파 생가 / 화성 당성 / 제부도 / 전곡항 / 궁평항 / 백미리어촌체험마을 / 국화도/입파도◄

 

융건릉

소재지 :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안녕동 187-1), 문의 : 031-222-0142

 

  수원에서 화성과 행궁을 둘러보았다면 다음 차례는 당연히 융건릉과 용주사다. 화성시 동쪽의 융건릉과 용주사 역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는 마음이 담긴 곳들이다.

  융건릉은 정조의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와 어머니 헌경왕후(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융릉과 정조 자신과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무덤을 이곳 화성으로 이장하고, 효심이 지극했던 자기 자신도 이곳에 묻혔다. 조선 왕릉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의 무덤이 이처럼 가까운 사례는 드물다.

  평평한 야산으로 보이는 왕릉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금세 울창한 솔숲이다. 대개의 왕릉처럼 이곳의 소나무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멀리서 보기에 쭉 뻗은 소나무들은 가까이서 보니 하나같이 굽어 있다. 혜경궁 홍씨의 한이 서린 듯하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서 이렇게 썼다.

  “하늘을 부르짖고 귀신을 원망할 뿐이니, 내 겪은 일이 자고로 왕후들에게 없던 일이고, 내 집 겪은바 자고로 남의 집에 없던 일이라. 하늘이 밝으시고 주상이 어질고 효성스러우시니, 내 비록 진상이 밝혀짐을 보지 못하고 떠날지라도 주상이 시비를 분간하여 내 억울함을 풀어주실 날이 있을 줄 아노라.”

  억울한 삶의 한을 안고 71세 노령에 회고록을 써낸 집념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융릉은 정자각과 능의 배치가 특이하다. 보통 일직선상에 위치하는데 정자각이 조금 비켜서며 능의 시야를 연다. 정조가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를 위해 그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홍살문 오른쪽의 연못 곤신지 등을 고려하면 풍수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비각에 나란한 비석은 정조의 효성이다. 정조가 사후에라도 아버지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될 것을 바라 비석의 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뒀기 때문이다.

 

 

용주사

소재지 : 화성시 용주로 136 (송산동 188), 031-234-0040

 

  용주사 역시 정조의 효심이 깃들어 있다.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가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 갈양사가 다시 중창하게 된 것은 조선 제22대 정조 임금 시절이다.

  정조는 즉위 13년을 맞던 해 전농동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수원화성과 행궁을 만드는 대대적인 역사를 벌인다. 아버지 묘와 화성의 건설과정을 보기 위해 수시로 이곳까지 거동하게 되자 아예 시흥으로 질러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하고 안양의 만안교라는 돌다리도 새로 만들어 놓게 된다.

  이때 정조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스님이 보일당 사일 스님이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출신이었던 보일 스님은 정조에게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설해주었다고 한다. 정조는 보일 스님이 들려준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아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고 명복을 빌기 위해 그 주변에 폐사된 갈양사 터에 절을 새로 중창하여 용주사라 이름 붙여서 사도세자 묘의 능침사찰로 삼았다.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에서 사찰을 세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효찰대본산 용주사라는 호칭과 경내의 효행박물관이 정조의 효성을 대변한다. 김홍도의 후불탱화가 있는 대웅보전과 국보 제120호 용주사 동종이 있는 종각이 돋보인다.

  용주사는 이렇듯 정조대왕의 효성이 깃든 효심의 본찰이자 경기도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80여 사찰을 거느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오랜 역사와 문화재 그리고 수행의 전통을 간직한 사찰이다.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제암리 392-2), 031-369-1663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는 수원에서 남서쪽으로 약 20㎞ 지점에 있는 조용한 농촌마을로 일명 ‘두렁바위’라고도 불려진다. 이곳은 1919년 3·1독립만세 운동시 국권 회복을 위한 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곳이며, 아울러 선조들의 한과 넋이 서린 곳이다.

  1919년 4월 5일 이곳 제암리 주민들은 발안 장터에서 3.1운동의 당위성을 외치며 격렬한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에 일본 헌병 30여병은 만세운동을 주도한 주민의 명단을 입수하고, 4월 15일 오후 2시경 제암교회에 주민을 모이게 한 뒤 교회 문을 폐쇄하고 교회에 불을 지른 후 교회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 무도한 사건으로 주민 23명이 학살되고 30여 채의 가옥이 불태워졌다. 무력에 의한 폭거였다.

  이 사건은 제암리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인 4월 16일, 미국 영사 커티스(Raymond Curtis), AP통신 경성 특파원 테일러(A. W. Taylor),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H. Underwood) 등에 의해 사건이 서울에 알려졌다. 또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도 사진을 찍어 일본 제국주의의 비인도성을 세계에 알렸다.

  후세에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기념관, 교육관 조형물 등을 설치하여 나라 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유적지 경내의 〈3.1운동 순국기념탑〉은 1953년 4월에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세워졌으며, 1982년 9월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실시되어 제암리교회 뒤편 양지 바른 곳에 마련된 묘소에 안장됐다. 이 주변은 사적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건평 1,801㎡의 규모로, 1983년에 설립되었다. 제암리학살사건에서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기념관은 시청각실과 제1, 2 전시관을 갖췄다.

  제1전시관은 제암리 학살의 배경이 된 사건부터 제암리 사건에 대한 전시물과 자료 등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제암교회 모형을 비롯하여, 그날의 참상을 그린 3폭의 기록화가 전시되어 있고, 외국 언론사의 보도기록, 유해 발굴 조사시의 사진, 발견된 유품, 전동례 할머니 증언 등이 있다. 제2전시관은 경기도 및 전국의 3·1운동, 국외의 독립운동, 일제의 탄압과 만행, 3·1독립운동의 얼굴들, 3·1운동이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 등 3·1운동에 대한 역사적 자료전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시청각실에서는 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까지 제암리 사건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증언 등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화성독립운동기념관

소재지 : 화성시 제암고주로 34 (제암리 418), 문의 : 031-5189-1950

 

  화성시는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와는 별도로, 2024년 5월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새롭게 개관했다. 기념관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제암리 주민 23명과 고주리 독립운동가 일가 6명을 제암리교회당 안으로 집결하게 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총을 쏴 학살한 뒤 교회당을 불태운 악명 높은 학살사건의 현장 근처에 문을 열었다.

  독립기념관이라고 하면 흔히 육중한 건물이 먼저 떠오르지만,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건물 자체가 지역의 자연과 어우러진 형태로 지하에 있어 외관상 위압적인 모습이 전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장은 지상이 아니라 모두 지하에 설계되어 있고 입구에서부터 전시장에 이르는 긴 통로는 작은 돌들을 모아 벽을 이루게 설계되어 있었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대지 2만 1322㎡(6,450평) 규모에 지하 1층, 지상 1층 기념관과 건축 연면적 5310㎡(1606평), 경기도 내 가장 큰 규모로 역사문화공원과 함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 전시장은 전동례 할머니가 겪었던 아픔이 뚝뚝 묻어나는 학살 현장 사진과 동영상으로 꾸민 대형화면 등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는 구성으로 상설전시실·기획전시실·어린이전시실 등 세 개의 공간으로 이뤄졌다.

  상설전시장에는 국권 침탈과 화성 사람들, 3·1만세운동과 화성 사람들의 저항, 3·1만세운동 이후 화성의 독립운동, 민족말살정책과 강제동원의 현실, 화성의 독립운동가 등을 알리는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며 기획전시실에서는 '어느 독립운동가의 삶과 일상'이란 주제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기증해 준 유물들을 전시 중이다.

  아울러 인근에는 제암리교회와 학살로 순국한 선열들의 무덤, 스코필드 동상 등이 있어 가족 단위로 찾아가볼 만한 3·1만세운동 순국유적지다.

 

 

남이장군 묘

소재지 :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 145, 031-369-2643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다. 2단으로 쌓인 석축대 위에 있다. 사성(莎城)에 둘러싸인 봉분을 중심으로 바로 앞에 상석이 놓여 있고, 왼쪽에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이 있는 간소한 묘이다. 1973년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이(南怡:1441∼1468)는 본관은 의령이다. 태종의 외손이며, 좌의정 권람(權擥)의 사위이다. 1457년(세조 3) 1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의 난(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여진의 건주위를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러 이름을 날렸다.

  적개공신이 되고 훈 1등이 되어 26세의 나이로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예종이 즉위한 후인 1468년 유자광의 무고로 역모를 도모한다는 죄명을 쓰고 능지처참형을 당하였다.

  400여 년이 지난 후인 1818년(순조 18) 우의정 남공철의 주청으로 관작이 복귀되었다. 시호는 충무이다. 후에 창녕의 구봉서원, 서울특별시 용산의 용문사 및 성동의 충민사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남이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의 남이섬에도 남이가 묻혔다는 전설이 있는 돌무더기가 있다. 남이섬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 돌을 함부로 가져가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섬을 유원지로 개발하면서 돌무더기 위에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어 지금은 그 둘레가 잘 치장되어 있다.

 

 

남양향교

소재지 : 화성시 남양읍 글판동길15번길 18-3 (남양리 335), 문의 : 031-355-6454

 

  남양 향교는 조선시대 유교와 성현의 가르침을 교육하던 교육기관이다. 고려말 조선초 약 625년의 역사를 품은 남양향교는 유림들이 학문을 수양하면서 위인들을 배향하던 곳이다. 1397년에 남양부 음덕리 면역곡동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며, 187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남양향교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다. 그 외 출입구인 내삼문과 외삼문 그리고 제사를 준비하는 수복실, 홍살문 등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앞면 7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중앙에 있는 건물 좌우에 날개를 붙인 듯한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어 매우 독특하다.

  음력 2월과 8월 정일에 열리는 [남양향교 석전대제]는 공자를 포함한 25성현에 대한 제례 의식으로 중요무형문화재이며, 이 외에도 음력으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 분향을 진행하고 있다. 대성전 옆쪽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1982년도에 지정 당시 나무의 나이가 130살이었으니, 남양향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남양성모성지

소재지 :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남양리 1704), 문의 : 031-356-5880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많은 천주교 순교자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무명 순교지로 한국 천주교회가 성모성지로 공식 선포한 곳이다. 조선조 때 남양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곳이다. 남양부사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이반행정에 관한 권한 외에도 민사소송과 형사범을 다루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양은 물론 그 인근에서 붙잡은 천주교인들을 도호부사가 있던 남양으로 끌어다가 처형했다. 그리고 남양은 지리적으로도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한 서해안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기록에 의하면,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사람 이름만 기록되어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곳 남양도호부에도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처형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양 순교지는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가꾸어져 오던 남양 순교지는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화성시에서 화성8경 중의 하나로 지정하여 홍보하고 있을 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양순교성지 내에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 품 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홍난파 생가

소재지 : 화성시 남양읍 홍난파길 32 (활초리 283-1) 문의 : 031-5189-6526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여명기를 개척한 난파 홍난파(1898~1941년)의 생가이다. 홍난파는 1898년 4월 10일 홍순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912년 YMCA 중등부를 졸업하고 1915년 조선정악전습소양악부를 마친 뒤 동 전습소의 교사가 되었다.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2년간 수학한 뒤 귀국하였으며, 1920년「봉선화」를 작곡하였다. 1922년 연악회(硏樂會)를 창설하였고 1925년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다. 한편 한국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발간하였을 뿐 아니라 소설도 발표하여 문학적 재질도 보였다.

  1926년 다시 일본 도쿄 고등음악학교에 편입하고 이듬해 도쿄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1929년 귀국하여 중앙보육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1931년 미국으로 건너가 셔우드음악학교에서 연구하고 1933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이화여전 강사를 지낸 뒤 경성보육학교 교수로 전임하였다. 1935년부터「백마강의 추억」등 모두 14곡의 대중가요를 나소운이라는 예명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1941년 8월 지병인 늑막염이 악화되어 43년간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봉선화」,「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등 가곡과 「달마중」, 「낮에 나온 반달」 등의 동요곡이 있다.

  현재의 생가 건물은 당초 멸실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한 것으로 목조 초가 4칸의 ‘ㄱ’자형 구조이다. 방 2개와 부엌으로 단촐하게 구성된 집에는 아담한 마당이 딸려있고 건물 처마 밑으로 난파의 초상화와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을 찍어놓은 사진 몇 장이 걸려 있다. 아늑한 마을에 자리한 초가를 둘러보노라면 「고향의 봄」 가락이 곳곳에서 들리는 듯하다.

 

 

화성당성(華城 唐城)

소재지 :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1-3, 문의 : 031-369-2069

 

  화성에는 삼국시대의 유적인 당성이 있다. 대부도 혹은 제부도로 가는 길 옆,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에 있다. 면적 134,545㎡, 둘레 1,200m로, 당항성(黨項城)이라고도 한다. 1971년 사적 제217호로 지정되었다.

  당성은 테뫼형과 포곡형을 결합한 복합식으로, 백제 시대에 테뫼형 산성이 축조된 후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였을 때, 백제의 영향을 받아 복합형 산성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당성은 중국에서 홍천하(洪天河)라는 인물이 이곳에 이르러 살았던 곳이라 하여 홍씨(洪氏)의 발상지로 전해지고 있다.

  신라가 점유한 후에는 중국 교역의 관문이었으며, 신라 말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하여 서해를 통해 중국과 교통했던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현재 동문·남문·북문의 터와 우물터, 건물지가 남아 있다. 산성의 일부가 복원되었고, 연차적으로 복원사업이 완료되면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훌륭한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제부도

소재지 :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 문의 : 031-355-3924

 

  제부도는 서신면 송교리 해안으로부터 서쪽으로 2.3㎞ 지점에 있는 섬이다. 대부도·선감도·탄도·불도 등이 북쪽에 있다.

  이 섬이 유명해진 이유는 소위 ‘모세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바닷길이 하루에 두 번 열려야 차량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썰물에 물길이 드러나기 시작해서 밀물로 다시 덮일 때까지 6시간 동안 바닷길이 열리는데 그 시각은 날마다 조금씩 달라 물때를 잘 맞춰가야 한다. 썰물 때 1~3m 깊이의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탄탄한 포장길 양쪽으로 폭이 500m가 넘는 개펄이 펼쳐진다.

  그런데, 물때와 관계없이 제부도에 들러갈 수 있는 길이 트였다. 2021년 12월, 제부도와 인근 전곡항을 연결하는 해상케이블카가 개통되었다. 이로써 해상도로를 따라서 들어오는 게 좀 번잡하고 어려웠었는데 해상케이블카를 통해서 드나들게 된 것이다. 운행구간은 2.12㎞, 대략 10분가량 소요되는데, 한 번에 최대 10명까지 시간당 1,500명을 수송할 수 있다. 바닥과 벽이 투명해 물때에 따라 바다도 보고 갯벌도 볼 수 있다.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고 교통이 편리하여 가족 단위의 1박 2일 휴양 코스 여행지로 이만한 데가 없다.

  제부도에 건너가면 작은 섬답지 않게 볼거리가 많다. 해안도로를 따라 남서쪽 끝에는 매들의 보금자리인 매바위가 있다. 30년 전 두 개의 바위 위에 매 둥지가 많아 매바위라 불렀다.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 매바위는 제부도 관광 포인트다. 해가 떨어질 때면 바위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제부도 여행에서 느끼는 멋은 남다르다. 또, 제부도에는 길이가 2.5km 정도의 조개껍데기가 섞인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파도가 거세지 않아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썰물 때는 바지락 캐기, 갯벌생태체험, 망둥어 낚시와 배 낚시, 그물체험이 연중 가능하며 여름철에는 해양레저 체험이 가능하다.

  또, 제부도 선착장 옆 주차장으로부터 해안선을 따라 나무테크로 된 산책로가 조성돼있다. 이 길은 ‘제비꼬리길’로 2017년 8월 걷기 좋은 여행길 10선에 선정되었다. 이 길은 선착장의 빨간등대에서 해안데크와 탑재산의 능선을 따라 걷는 길로 탑재산 정상에 오르면 서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탑재산에 연접한 해안산책로는 2016년부터 진행해온 ‘제부도 문화예술섬 프로젝트’의 결과로 꽃게, 괭이갈매기, 바지락 등 바닷가 생물을 주제로 아기자기한 설치물들이 가득하여 가족, 친구 또는 연인들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한 걷기와 사진 촬영을 하기에 최적지이다

  또, 제부도 아트파크는 전시와 공연이 가능한 예술공간으로, 특히 제부도의 아름다운 바다를 조망할 수 있으며, 지난 2017년 8월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공간으로,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中 대상’, ‘경기 유망관광 10선’에 선정되는 등 연이어 이슈가 되고 있다.

  각종 해산물이 풍성하여 음식문화시범거리가 조성될 정도로 제부도 맛집이 유명하다. 바닷가에 위치한 식당들은 조개구이, 생선회, 꽃게탕 등을 주로 판매한다.

  제부도해상케이블카 ‘서해랑’ 전곡정류장(화성시 서신면 전곡항로 1-10, 문의 : 1833-4997)에서 월~금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토~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행하며, 탑승권 발권은 운영 마감 1시간 전까지, 탑승은 30분 전까지 가능하다.

 

 

전곡항

소재지 :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로 5 (전곡리), 문의 : 031-357-6872

 

  인근의 제부도, 화성호, 궁평향 등과 함께 서해안 관광 벨트 개발계획에 따라 전곡항도 함께 개발되었다. 전곡항은 전국 최초로 레저 어항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곳이다. 전곡항은 항구 옆 방파제가 있어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지 않아 배가 드나들기 수월하다.

  이런 입지적 조건으로 탄도항은 요트와 보트 등 다양한 종류의 선박을 위한 정박시설이자 해양레포츠를 위한 필수 기반시설 마리나 시설을 갖추고 있어 탄도항은 서해 해양스포츠의 메카로 떠올랐다.

  전곡항에는 부잔교가 설치되어 있다. 부잔교는 육지로부터 일정 간격으로 폰툰(pontoon)이라는 작은 상자를 띄워 배에 탈 수 있도록 만든 접안 시설이다. 전곡항 부잔교는 서해로 바다낚시를 나가거나 섬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부잔교 부근에서 낚싯대를 드리워 바다낚시를 할 수 있다.

  전곡항 맞은편에 있는 종합수산시장에서는 다양한 수산물을 구입하거나 상차림으로 먹을 수 있다. 1층은 활어회, 건어물 판매장과 상차림 식당이 있다. 2층은 양념집, 매운탕, 칼국수 전문점 같은 식당이 대부분이다. 3층은 리조텔과 민박 같은 숙박시설이다. 노래방과 조개구이 코너, 전망대까지 한 건물에서 모두 즐길 수 있다. 주차는 건물 앞 공간이나 맞은편 전곡항 부잔교 주차장을 사용하면 된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전곡항 등대가 있다.

  전곡항 빨간등대나 바다 전망대 등 구경하거나 사진 찍을 만한 포토존이 있다. 넓게 트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서해 일몰명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곡항에서는 입파도를 왕복하는 경기도선이 성수기에는 하루 네 차례(9, 11, 13 16), 비수기에는 하루 세 차례(9, 13, 15) 운항한다. 이 중 1항차, 마지막 항차는 정기운항하지만, 손님이 없으면 중간 항차는 운항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문의 : 031-357-4556, 010-4354-4123)

 

 

궁평항

소재지 : 화성시 서신면 궁평항로 1049-24 (궁평리 689)

 

  낙조가 아름다운 궁평항은 2008년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싱싱하고 맛 좋은 수산물들이 가득한 수산시장이 잘 갖춰져 있는 작은 항구다. 소나무 숲속으로 약 700m 정도의 궁평항 해송길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산책을 하거나 하이킹하는 사람들의 쉬어가는 길목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궁평항은 방파제 끝에 설치된 전망대 데크에서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다. 조그만 배와 낚시꾼들을 유혹하는 매력적인 다리인 피싱피어(바다 위 잔교 낚시터)에서 낚시를 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궁평 피싱 피어는 잔교 길이가 193m, 넓이는 6~15m, 수용 규모는 약 500명으로 썰물 시에도 늘 바닷물이 차 있어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봄에는 숭어와 우럭, 여름에는 우럭, 망둥어, 농어가 잘 잡히며 가을에는 삼치, 전어, 우럭, 광어, 망둥어, 겨울에는 우럭과 망둥어가 잘 잡히며 최근에는 숭어가 최고의 낚시 대상어로 주목받고 있다. 바다 쪽으로 뻗어 나가 끝에 그늘막이 있는 궁평항 피싱 피어는 그 자체가 이국적인 바다 풍경을 선사하는데 화성8경의 하나라는 궁평 낙조와 어우러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출사지이기도 하다.

  궁평항 주차장 쪽으로 길게 늘어선 푸드트럭길에는 유명한 새우튀김과 오징어튀김, 어묵, 핫도그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으며 궁평항 광장에는 여름철 물놀이터도 개장하기 때문에 가족끼리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다.

  궁평항에서는 서해도선이 국화도와 입하도를 운항한다. 성수기(7~8월)에는 하루 네 차례(9시, 11시, 13시, 16시), 비수기에는 세 차례(9시, 13시, 15시) 궁평항을 출발하여 국화도를 거쳐 입하도를 도착한다. 국화도까지는 40분, 입하도까지는 1시간이 소요된다. 이곳에서도 전곡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첫배와 마지막 배는 정기운행하지만, 손님이 없으면 중간 시간에는 운항하지 않으니, 확인 필수. 또, 평일과 주말의 출발 시간이 다를 수 있음. *문의 : 031-356-9387, 010-9009-0685, 010-8274-4050)

 

 

 

야자수마을카페

소재지 : 화성시 서신면 밸미길 242-39 (백미리 363-12), 문의 : 031-355-2345

 

  남쪽 휴양지에서나 볼 수 있던 야자수를 화성에서 만날 수 있는 이색적인 곳, 야자수마을 카페다. 궁평항 옆 해변에 자리 잡고 있다. 1,000평이 넘는 규모의 온실 내부로 들어서면 50년 넘은 야자수 800그루에 더해 돌하르방, 귤나무, 동백나무까지. 육지에서 제주도 감성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어 특별한 곳이다. '야자수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야자수마을카페, 야자수마을회센터, 야자수마을캠핑장까지 운영하고 있다.

  야자수마을카페는 식물원 카페라는 콘셉트지만 식물원에서 음료를 파는 것이 아니라 카페에서 음료를 사야 야자수를 보러 들어갈 수 있는 형태이다. 대형식물원 안에는 곳곳에 테이블을 설치하여 야자수 숲속에서 차와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식물원 밖, 파라솔이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도 해변 정취를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게 꾸몄다.

 

 

백미리어촌체험마을

소재지 : 화성시 서신면 백미길 210-34 (백미리 329-1), 문의 : 031-357-3379

 

  백미리 마을은 화성시 서신면의 바닷가와 인접한 마을로서 해산물의 종류가 많고 그 맛 또한 다양하여 백미 또는 백미리라 불리어 졌다고 한다. 눈부신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갯벌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어촌이다. 옛날 마을 주민들이 바다에 나갈 때면 안전을 빌었다는 감투섬을 끼고 있다.

  이곳은 감투섬 앞으로 끝없이 펼쳐진 백미리 갯벌은 고둥, 칠게, 농게, 꽃부채게 등 카메라에 포착될 만큼 게들의 천국이다. 갯벌체험과 함께 그물체험, 독살체험, 배낚시체험, 사두질체험, 카누체험,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갯벌엔 바지락이 많아 초보자도 체험이 가능하다. 정해진 요금을 지불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다양한 어촌 체험이 가능하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백가지 맛이 있는 마을’이라는 별칭답게 백미항에서는 봄철 주꾸미, 여름철 밀국 낙지, 가을엔 대하와 전어요리가 유명하여 관광객들의 입맛을

 

 

국화도

소재지 :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 100

 

  국화도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에 속하는 섬이다. 부속 섬으로는 북쪽의 매박섬과 남쪽의 도지섬이 있고, 그 밖에 국화리가 관할하는 입파도가 있다. 행정 구역이 경기도 화성시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화성시보다 충청남도 당진시에 훨씬 더 가까워 주민들의 생활권도 대체로 당진시에 속한다. 

  국화항에서 화성시 궁평항과 당진시 장고항을 오가는 배가 다니는데, 궁평항과의 거리는 12 km, 장고항과의 거리는 불과 3km밖에 안 된다. 지리적으로 당진시와 근접하여 외지생활에서도 거의 당진 시내에서 해결하는 편이 많아 비수도권인 충청남도 및 당진시에 편입되길 바라는 여론이 있다.

  꽃이 늦게 피고 늦게 진다고 해서 늦을 ‘만(晩)’ 자를 써 만화도라 불렸으나 일제 시대 국화가 많이 피는 섬이라 해서 국화도라 바꿔 부르게 되었는데, 실제로 섬 전체에 들국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주민들은 바지락・굴 등 어패류 채취를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일부는 관광업에 종사한다. 국화도는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운 형상인데, 북쪽 끝에 매박섬이, 남쪽 끝에 도지섬이 있다. 이들 섬은 썰물이 되면 본섬과 이어지지만, 밀물이 되면 j로 다른 섬이 된다.

  장고항이나 왜목마을에서 바라보면 왼쪽으로 국화도와 형제처럼 나란히 도지섬이 떠 있는데, 500m쯤 되는 국화도와 도지섬 사이에는 썰물 때에 갯바위와 모래밭이 드러나 걸어서 건너갈 수 있고, 이 바닷길 주변에는 고동을 비롯한 각종 조개가 많아 누구든지 호미와 망태기를 하나 들고 나서면 1시간 만에 가득 채울 정도이다.

  국화도 선착장 마을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조개껍질과 모래가 적당히 어우러진 천혜의 해수욕장이 활처럼 동그랗게 펼쳐져 길게 이어진다. 매박섬으로 가는 해변이다. 해수욕장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모래와 자잘한 자갈이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수욕장 뒤로는 펜션들이 밀집되어 있다.

  해수욕장에서 이어지는 매박섬도 도지섬과 마찬가지로 썰물 때에는 바닷길을 통해 걸어갈 수 있다. 매박섬을 토끼섬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2003년 어촌계장 명재옥씨가 암토끼 세마라와ㅓ 수토끼 두 마리를 매박섬에 넣으면서 유래되었다. 국화도 해수욕장의 동쪽 끝은 바위지대이고, 부근의 산자락엔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북향한 해수욕장 앞에 서면 바다 건너편 입화도와 도리도가 빤히 건너다보인다.

  나들이 명소로 손색이 없는 풍광을 자랑하는 국화도는 당일치기 코스로도 좋지만, 하루 이틀 섬에 머무르며 고즈넉하고 소박한 어촌마을의 정취를 느끼고 휴식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입파도

소재지 :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

 

  입파도(立波島)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에 속하는 섬이다. 국화도의 국화항에서 약 5 km 북쪽에 있다. 이 섬의 입파항에서 화성시 육지의 궁평항을 오가는 배가 다니는데, 궁평항과의 거리는 12km이다.

  “서서 파도를 맞는다”라는 뜻에서 섬 이름이 유래하였다. 섬의 모양은 남북 방향으로 되어 있다. 중심부 동서의 완만한 능선과 해안의 모래 및 조약돌밭을 제외하면, 섬 전체가 30% 이상의 급사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남북해안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북쪽의 봉우리는 높이가 100m 이상이며, 이는 남쪽으로 향할수록 낮아진다. 해안을 따라서 해변이 좁게 발달해 있고, 특히 남쪽 해안에는 해식애가 있다. 입파도의 남쪽 해안 절벽은 화성8경 가운데 하나로 홍암이 유명하다.

  섬 남쪽 해안 태고의 신비를 묻고 우뚝 솟아 있는 붉은 기암괴석인 홍암은 암벽 사이 곳곳에서 자생하는 해송, 갈매기 등의 바닷새와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절경을 연출한다. 홍암으로 가는 길은 등대에서 등산로를 따라 내려와도 되지만 물때를 확인하면 해안 길로도 갈 수 있다.

  입파도는 바닷물이 깨끗해 인근 남쪽의 국화도와 함께 여름철이면 피서객과 낚시꾼으로 붐빈다. 궁평항에서 입파도로 운항하는 서해도선이 있으며 주말은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으니 자세한 문의는 궁평항 서해도선 사무실로 문의가 가능하다. 전곡항에서는 경기도선이 입하도를 운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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