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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 황동규

혜강(惠江) 2020. 11. 20. 06:21

 

 

우포늪

 

 

- 황동규

 

 

 

우포에 와서 빈 시간 하나를 만난다.

온 나라의 산과 언덕을 오르내리며

잇달아 금을 긋는 송전탑 송전선들이 사라진 곳,

이동 전화도 이동하지 않는 곳,

줄풀 마름생이가래 가시연(蓮)이

여기저기 모여 있거나 비어 있는

그냥 70만 평,

누군가 막 꾸다 만 꿈 같다.

잠자리 한 떼 오래 움직이지 않고 떠 있고

해오라기 몇 마리 정신없이 외발로 서 있다.

이런 곳이 있다니!

시간이 어디 있나,

돌을 던져도 시침(時針)이 보이지 않는 곳.

 

 

  -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

 

 

◎시어 풀이

 

*줄풀 :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못이나 물가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중국, 시베리아 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마름 : 마름과의 한해살이풀. 연못이나 늪에서 자란다.
*생이가래 : 생이가랫과의 한해살이풀. 물 위에 떠서 자라는 풀로 가늘고 길며 잔털이 배게 난다.
*가시연 : 수련과의 한해살이풀. 줄기와 잎에 가시가 있다.
*해오라기 : 왜가릿과의 새.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지, 우포늪을 보며 우포늪의 원시적 생명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이다.

 

 우포늪은 경상남도 창녕군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지이다. 이곳의 늪은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 ‘쪽지벌’까지 4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우포늪이 가장 커서 전체를 대표하는 명칭이 되었다. 70여만 평에 이르는 천연 늪에는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며 동식물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개발이란 이름 아래 국내의 많은 늪이 사라지고, 이제 늪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우포늪은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 생태계 특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에는 람사르 협약에서 보존 습지로 지정되어, 이제 우포는 국제적으로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충분한 습지가 되었다.

 

시의 화자는 ‘우포늪’에서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는 자로 우포늪의 다양한 생물을 통해 우포늪이 가진 원시적 생명력에 감탄하고 있다. 상징적 시어를 사용하여 화자가 관찰한 우포늪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으며, 우포늪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동식물들을 열거하여 대상의 특징을 강조하고,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상을 감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대조적 이미지를 지닌 시어들로 대상의 속성을 부각하고, 시상이 전개됨에 따라 화자의 정서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제13행의 단연시로서, 의미상 두 단락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반부(1~7행)에서는 문명에서 벗어난 공간으로서의 우포늪을 묘사하고, 후반부(8~13행)에서는 원시적 생명력이 충만한 우포늪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첫 행에서 ‘우포에 와서 빈 시간 하나를 만난다’라고 표현한다. 왜 ‘빈 시간’일까? 여기서 ‘빈 시간’이란 문명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문명의 시간은 우포늪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빈 시간’이 공허한 시간만은 아니다. 이 시간은 다양한 동식물을 있는 그대로 품어 주고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이 충만한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명의 시간이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온갖 동식물들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곳 70만 평에는 문명을 상징하는 ‘송전탑 송전선’과 ‘이동 전화’가 없다. 그 대신 ‘줄풀’, ‘생이가래’, ‘가시연’이 여기저기 모여 있거나 피어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자연과 문명을 상징하는 시어를 대비하여 우포늪이 문명에서 벗어나 원시적 생명력이 살아 있는 자연 그대로의 생태 환경임을 강조하고 있다.

 

 후반부에 와서 화자는 자연 그대로의 우포늪을 가리켜, ‘누군가 막 꾸다 만 꿈 같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자연의 생명력이 온전히 보존된 우포늪의 풍경을 현실을 벗어난 공간처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화자는 ‘잠자리 한 떼’와 ‘해오라기 몇 마리’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평화롭게 서식하고 있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화자는 이렇게 문명의 그늘에서 벗어나 시간의 흐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우포늪의 느낌을 받는다. 그야말로 ‘빈 시간 하나를 만난다.’라는 표현이 맞다. 그래서 화자는 ‘이런 곳이 있다니!’라고 표현한다. 이 한 마디 시구는 원시적 생명력이 살아 있는 우포늪에 대한 감탄으로, 화자의 정서가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마지막 ‘시간이 어디 있나/ 돌을 던져도 시침(時針)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말로 시상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보면 화자가 우포에 와서 만난 ‘빈 시간’은 문명의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 곳, 문명의 시간에서 지워진 시간이며, 그 빈 시간 안에서 묵묵하게 수많은 생명을 키워 온 생명력이 충만한 시간일 뿐이다.

 

 이처럼 화자는 문명의 시간에서 벗어나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과 같은 우포늪을 이상적 공간처럼 여기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우포늪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다.

 

 

▲작자 황동규(黃東奎, 1938~ )

 

  시인. 평남 숙천 출생. 《현대문학》에 <시월>, <즐거운 편지> 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현대 지식인들이 느끼는 섬세한 서정을 이미지즘적인 기법을 빌려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집으로 《어떤 개인 날》(1961), 《삼남에 내리는 눈》(1968), 《비가(悲歌)》(1965), 《평균율1》(1968, 황동규, 마종기, 김영태 3인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풍장》(1983)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