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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만찬' / 함민복

혜강(惠江) 2020. 11. 3. 09:50

 

A. 그림자

 

- 함민복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 시집 《말랑말랑한 힘》(2005) 수록

 

 

▲이해와 감상

 

  2005년 발표작인 이 시는 자신의 ‘그림자’를 하나씩 안고 살아가고 있는 지상의 모든 존재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어 고통 없는 세상이 펼쳐질 것을 염원하는 시인의 열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의 중심적인 제재는 ‘그림자’이다. 그림자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지니기 마련인 분신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햇빛이 비치는 반대쪽에 형성된다는 점에서 밝음과 대비되는 어둠을 내포하며, 모든 존재가 지니는 아픔과 상처 같은 것을 상징한다. 혹은 우리의 의식 아래에 존재하면서 의식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은 이처럼 상징적 의미가 풍부한 ‘그림자’를 통해서 모든 생명이 지닌 그늘에 대한 시적 통찰과 포용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시는 한 행을 하나의 연으로 구성하여 여백의 미를 강조하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모두 4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연의 서술어를 ‘~좋겠다’라는 시구를 반복하여 사용하여 시적 의미를 강조하고 화자의 바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내용상으로 3연까지는 시인이 마음의 눈으로 포착한 대상들이 지닌 그림자에 대한 바람을 표출하고 있으며, 마지막 4연에서는 궁극적으로 시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모습을 상상력을 통해 구상하고 있다.

 

  화자는 ‘시들어 떨어지는 꽃’, ‘허리가 휜 어머니’, ‘찬 육교에서 구걸하는 걸인’에 대해 안쓰러움과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1연에서는 피자마자 곧 시드는 ‘꽃’이 지닌 그림자를 떠올리면서 그것이 ‘색깔’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한다. 여기서 ‘꽃’은 지상의 존재들을 대변하는 것으로 지상에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유한성을 지니고 있어 그늘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화자는 그러한 ‘꽃’의 그림자만이라도 ‘색깔’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2연은 ‘허리가 휜’ 어머니의 그림자가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화자는 세월의 무게에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어머니의 모습에 대한 안쓰러움을 드러내며 어머니의 육신이 치유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3연은 차가운 육교에 드려 구걸하는 걸인의 그림자가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한다. 이 역시 생존의 고통에 시달리는 현대인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배려들 촉구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경제구조 속에서 소외되어 고통받고 있는 계층에 대한 관심과 위로, 포용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4연에서 화자는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고 피력한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마음에 평화와 안식이 깃들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것은 ’평평한 세상, 곧 공평하고 평등한 세상에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그림자’가 없는 마음은 곧 평정과 안식이 상주하는 곳이므로, 그런 세상의 도래를 염원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 <그림자>는 상처받고 소외된 지상의 존재자들에 대해서 그들의 숙명적인 고통과 상처를 감싸 안아주고 치유하려는 모성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함민복 시인의 시들은 속악한 자본주의적 세계의 비인간적인 폭력과 부조리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면서도 소외된 현대인에 대해서 따스한 손을 내밀고 그것을 감싸 안으려는 포용력을 보여준다고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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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만찬(晩餐)

 

- 함민복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누군가가 보내준 반찬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따스한 인간애에 대한 감동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홀로 지내고 있다. 그런 화자에게 ‘당신’이 ‘반찬’을 보내온다. 화자는 그 ‘반찬’에 담긴 ‘당신’의 마음을 느끼며, 저녁상 앞에서 ‘반찬’을 보내온 ‘당신’의 마음에 감사한다.

 

  4연 8행으로 된 짤막한 이 시는 1연과 4행은 한 행으로 되어 있다. 1연은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라는 표현으로, 화자에게 ‘반찬’을 보내온 이유를 밝힌 뒤, 2연에서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라고 하면서 ‘반찬’을 보내온 ‘당신의 마음’에 감복하고 있다. 여기서 화자는 ‘당신의 마음’을 ‘반찬’과 ‘그릇’에 빗대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3연은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이라는 표현으로, 화자는 저녁상 앞에서 ‘반찬’을 보내온 ‘당신의 마음’에 고마워한다.

 

  그리고 마지막 4연에서는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이라고 하여, 당신이 보내온 반찬을 먹으며 반찬을 보내온 당신의 마음에 감사하고 있다. 화자는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이런 화자가 안쓰러워 당신은 화자에게 반찬을 보내고, 화자는 반찬을 먹으며 당신에 대한 감사함을 ‘마음이 마음을 먹는’이라 표현하였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만찬(晩餐)’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반찬을 보내준 당신이나 반찬을 받고 감사하는 화자나 모두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화자는 이러한 시를 통하여 따스한 인간미에 대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작자 함민복(咸敏復, 1962 ~ )

 

  시인. 충청북도 충주 출생. 1988년 〈성선설〉 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들을 따뜻하고 진솔한 언어로 끌어안는 서정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우울 씨의 일일》(1990), 《자본주의의 약속》(1993),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 《말랑말랑한 힘》(2005), 《꽃봇대》(2011),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 등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눈물은 왜 짠가》(2003), 《미안한 마음》(2006),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2009)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