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讚頌) / 한용운
찬송(讚頌)*
- 한용운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珊瑚)*가 되도록 천국(天國)의 사랑을 받으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 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의(義)가 무거웁고 황금(黃金)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복(福)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梧桐)*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光明)과 평화(平和)를 좋아하십니다.
약자(弱者)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慈悲)의 보살(菩薩)*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 시집 《님의 침묵》(1926) 수록
◎시어 풀이
*찬송(讚頌) : ① 미덕을 기리고 칭찬함. ②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고 찬양함. 또는 그런 일.
*산호(珊瑚) : 산호과의 자포동물로서, 흔히 그 골격을 말함. 산호충이 모여서 나뭇가지 모양을 형성한 것인데, 바깥쪽은 무르고 속은 단단한 석회질로 되어 있어 속을 가공하여 장식품으로 씀.
*오동(梧桐) : 오동나무.
*보살(菩薩) : ① 부처의 다음가는 성인.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여자 신도를 대접해 부르는 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임에 대한 ‘찬송’을 통해 임이 순수하고, 의롭고, 자비의 존재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화자는 직접 드러나 있지 않으나 임을 ‘찬송’하며, 절대적인 임에 대한 예찬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3연으로 된 이 시는 각 연의 각행이 유사한 통사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운율을 형성하고 있으며, 비유와 상징을 통해 임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경어체를 사용하여 임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드러내고, 시어의 대비와 불가능한 상황 설정을 통해 임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가 생각하는 ‘님’의 모습과 그 모습이 드러내는 존재의 의미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백 번이나 단련한 금결(1연) : 순수한 존재
*아침 별의 첫걸음(1연) : 희망을 주는 존재
*옛 오동의 숨은 소리(2연) : 진리의 소리를 지닌 존재
*얼음 바다의 봄바람(3연) : 자애로운 존재
‘님’이 이런 존재이기에 화자는 그 ‘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님’이 순수하고 의롭고 자비로운 존재가 되기를 ‘천복의 사랑을 받으옵소서’, ‘복의 씨를 뿌리옵소서’, ‘자비의 보살이 되옵소서’라는 말로 기원하는 것이다.
1연, ‘님이여, 백 번이나 단련한 금(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珊瑚)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으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 별의 첫걸음이여’
→ 이것은 지고지순한 고귀하고 순수한 임에 대한 예찬이다. 이 시의 시적 대상인 ‘님’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이며, ‘백 번이나 단련한 금(金)결’은 고귀하고 순수한 결정체이며, ‘아침 별’은 밝고 희망을 주는 존재로서, 이 둘은 모두 ‘님’을 비유하는 보조관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ㅂ니다’, ‘ㅂ소서’는 는 경어체로서 경건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여“의 감탄을 드러내는 조사는 ’님‘에 대한 예찬을 드러내는 것이다.
2연, ’님이여, 당신은 의(義)가 무거웁고 황금(黃金)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복(福)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梧桐)*의 숨은 소리여.
→ 이 대목은 의로운 임에 대한 희구(希求)를 표현한 것이다. ‘임’은 ‘의’가 중요하고 ‘황금’은 하찮은 것임을 알고 계신 분이라며, 약자들이 사는 세상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원한다. 여기서 ‘의’는 본질적이며 초월적인 가치로 물질적이며 비본질적인 ‘황금’과 대조가 되는 것으로 임은 ‘님’이 의를 존중하는 분임을 알기에 약자를 가리키는 ‘거지’의 ‘거친 밭’(의롭지 못한 현실)에 ‘복의 씨를 뿌리옵소서’라는 말로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소망한다. ‘복의 씨를 뿌리옵소서’는 자비의 행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어 ‘님’을 향하여 ‘옛 오동의 숨은 소리’라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심오한 정신적 가치인 진리의 소리를 지닌 존재라며 임을 칭송하고 있다.
3연,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光明)과 평화(平和)를 좋아하십니다./ 약자(弱者)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慈悲)의 보살(菩薩)*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 임은 광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로서 암흑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에게 자비의 보살행을 베풀 수 있는 능력자로서 얼음을 녹이는 봄바람과 같이 고통 속에 있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 되어 주길 기원하고 있다. 여기서 ‘봄과 광명과 평화’는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대상이며, ‘약자’는 우리 민족을, ‘눈물’은 자비와 구원을 의미한다. 그리고 ‘얼음 바다의 봄바람’은 임이 ‘얼음 바다’로 비유된 얼어붙은 것 같은 암담한 현실을 녹이는 ‘봄바람’처럼 자애로운 존재로 칭송하고 있다.
이 시는 불교적 상상력을 토대로 해서 도(道)를 터득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개인의 영달이나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중생의 고통과 번민을 해결하는 자비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시는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고통과 번뇌에 시달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치유해줄 자비의 실천이라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 ‘님’은 일제 강점기에 놓인 조국이며, ‘약자’는 고통 속에 신음하는 우리 국민이며, ‘얼믐바다의 봄바람’은 광명한 세상, 즉 조국 광복을 기원하는 시로 볼 수 있다.
▲작자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시인 · 승려 · 독립운동가. 속명은 유천(裕天). 호는 만해(萬海). 충남 홍성 출생하여 1905년 불교에 입문했으며, 1918년 불교 잡지 《유심(愉心)》을 창간하여 편집인과 발행인이 되었다. 이때 《유심》에 시 <심(心)>을 발표함으로써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1925년에는 한국 근대 시사의 불후의 업적인 <님의 침묵>을 펴내어 민족의 현실과 이상을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색과 신비적 명상 세계를 형상화한 철학적·종교적 연가풍의 시를 주로 썼고, 김소월과 함께 한국 근대시의 정초를 놓았다.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시집 《님의 침묵》(1926) 외에 《조선 불교 유신론》, 《불교 대전》 등의 저서를 남겼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