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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身分) / 하종오

혜강(惠江) 2020. 10. 15. 06:05

 

 

 

신분(身分)

 

 

 

- 하종오

 

 

 

 

한국 청년 지한석 씨가 하는 몸짓 손짓을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 씨는 가만히 바라본다

 

파파윈한 씨는 이주민* 이고

지한석 씨는 정주민*이지만

같은 공장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노동자여서

손발도 맞고 호흡도 맞다

 

공장의 불문율*에는

일하고 있는 동안엔

남녀 구분하지 않고

불법 체류* 합법 체류 구분하지 않고

출신 국가 구분하지 않는다는 걸

그도 알고 그녀도 안다

세계의 어떤 법령에도

노동하는 인간의 신분을 따질 수 있다고

씌어 있진 않을 것이다

 

한국 청년 지한석 씨가 내는 숨소리에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 씨는 가만히 귀 기울인다.

 

 

- 시집 《입국자들》(2009) 수록

 

 

 

◎시어 풀이

 

*이주민(移住民) : 다른 곳이나 나라에 옮아가서 사는 사람.

*정주민(定住民) :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주민.

*불문율(不文律) : 문서로 규정한 것이 아니고,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규칙이나 계율.

*체류 : 객지에 가서 머물러 있음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주민과 정주민이 모두 동등한 인간적 가치를 가진 존재임을 강조하고, 이국 문화에 대한 수용과 포용을 통한 조화로운 공존과 화합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이 작품에 드러나지 않으나, ‘보여 주기’의 방법을 통해 대상을 포착하여 전달하는 이 시는 같은 공장에 근무하는 지한석 씨와 파파윈한 씨를 제재로 하여 대상의 구체적 이름을 드러내 사실성을 높이고,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을 통해 대상의 속성을 드러내는 특성이 있다.

 

   1, 2, 4연에서 이주민 파파윈한 씨와 정주민 지한석 씨가 조화롭게 근무하는 장면을 제시하고, 3연에서는 노동 현장에서 지켜지고 있는 객관적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의 화자는 직접적인 의견 표출 없이 장면과 객관적 사실만을 담담한 어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이주민과 정주민의 조화로운 공존의 모습을 바라보는 화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는 이주민인 미얀마의 파파윈한 씨와 정주민인 지한석 씨를 소개하며,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공장 같은 부서에서 손발과 호흡이 맞게 신분의 차이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화자는 두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2연에서는 그러한 현실을 보다 심화시켜 이미 노동의 현장에서는 ‘남녀 구분’, ‘체류의 ’불법과 합법의 구분‘, ’출신 국가 구분‘이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그녀도 안다‘는 말로, 차별과 구분이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세상의 어느 법령에도’ 노동하는 인간의 신분상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에 근거한다.

 

  마지막 3연에서는 ‘한국 청년 지한석 씨가 내는 숨소리에/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 씨가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라고 진술한다. 이러한 진술은 ‘이주민과 정주민이 조화를 이루고 공존하는 삶의 추구’라는 주제 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화자는 국경을 넘어 하나가 될 가능성을 통해 이주 노동자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시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정주민과 이주민을 구별 짓는 차별적 인식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이 시를 통해 우리 사회가 그들을 구분하는 모든 기준을 제시한 후,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공간에서 동등한 인격체이자 동료로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동료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작자 하종오(河種五, 1954 ~ )

 

 

  시인.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에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1980년 ‘반시(反詩)’ 동인으로 참가했다. 초기에는 강한 민중 의식과 민족의식을 기초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족, 탈북자,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 등의 삶과 애환을 다룬 시들을 주로 창작하고 있다.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1981), 《사월에서 오월로》(1984), 《넋이야 넋이로다》(1986), 《젖은 새 한 마리》(1990), 《쥐똥나무 울타리》(1995), 《아시아계 한국인들》(2007), 《입국자들》(2009), 《제국》(2011)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