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새장 같은 얼굴을 향하여 / 최승호

혜강(惠江) 2020. 10. 4. 08:43

 

 

새장 같은 얼굴을 향하여

 

 

- 최승호

 

 

 

어느 날의 하루는 별 기쁨도 보람도 없이
다만 밥 먹기 위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저녁엔
여물통에 머리를 떨군 소가 보이고
달이 떠도 시큰둥한* 달이 뜬다

지난 한 해는 바쁘기만 했지
얼마나 가난하게 지나갔던가
정말 볼품없는* 돼지해였다
시시한 하루에
똑같은 하루가 덧보태져
초라한 달이 되고
어두운 해가 되고
참 시큰둥하고 따분하게*살았다

놀라울 것 없는 이 평범한 삶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빈 새장 같은 죽음의 얼굴은
이빨에 앵무새 깃털을 문 채
웃고 있는데

 

 

-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1994) 수록

 

 

◎시어 풀이

*시큰둥한 : 달갑지 않거나 못마땅하여 시들한.

*볼품없는 : 겉로 보기에 초라한. 보아줄 만한 데가 없는.

*따분하게 : 재미가 없어 지루하고 답답하게.

 

 

▲이해와 감상

 

  최승호의 1985년 발표작인 이 시는 빈 새장의 죽음 이미지를 통해서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게 살아온 지난날의 삶을 반성하며, 적극적이고 치열한 삶을 다짐하는 작품이다.

 

  모두 4연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평이한 진술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이지만 그 평범한 시적 진술 속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다. 인간의 실존을 고민했던 스위스의 조각가 자코메티 ‘새장’에서 영감을 얻어, 무의미하게 지내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적이고 무의식적인 삶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죽음 앞에 선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목인 <새장 같은 얼굴을 향하여>에서 ‘새장’은 죽음의 얼굴을 표상하고 있으며, 살아 있는 존재를 먹어치우는 시간과 같은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4연으로 된 이 시는 1~2연에서 무의미하고 따분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3~4연에서는 삶에 대한 자각을 드러내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별 기쁨도 없이 보람도 없이 살아 온 자신을 ‘여물통에 머리를 떨군 소’에 빗대어 짐승처럼 단지 생존을 위해 살았던 무의미한 삶을 성찰하고 있다. 2연에서는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볼품없고 따분하게 살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반성에서 화자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여러 수식어를 동원하여 반성한다. 즉 ‘가난하게’, ‘볼품없는’, ‘시시한’, ‘똑같은’, ‘초라한’, ‘시큰둥하고 따분하게’ 등의 시어들을 통해 자신의 지난 일 년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시어들은 생동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없는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삶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3연에서는 시상이 전환된다. 1~2연에서 드러난 자신의 자화상에 대한 자조와 반성이다. 화자는 역설을 통해 지나온 자신의 과정에 대해 엄정하게 가치 평가하고 있다. ‘놀라울 것 없는 이 평범한 삶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오히려 놀랍다는 역설을 통해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면서, 그대로 지속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강한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다.

 

  4연은 그러한 자신의 평범하고 무기력한 삶에 대한 인상을 ‘빈 새장 같은 죽음의 얼굴은/ 이빨에 앵무새 깃털을 문 채/ 웃고 있는데’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자코메티의 작품 <새장>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하지만, 굳이 그의 작품을 모르더라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큰 지장은 없다. ‘빈 새장’은 허공을 가두고 있는 쇠창살인데, 그것은 공허와 허무, 그리고 공포와 폭력의 다양한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한 새장을 화자는 ‘죽음의 얼굴’이라고 비유하고 있는데, 여기서 ‘죽음의 얼굴’은 생명이 있는 존재를 먹어 치울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의 이미지를 러낸 것으로, 화자는 죽음의 얼굴인 빈 새장이 ‘이빨에 앵무새 깃털을 문 채/ 웃고 있는데’라고 표현하면서 불길함과 공포심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때 ‘앵무새 깃털은 다름 아닌 타율적인 삶을 반복하며 살아 온 자신의 삶과 그것의 허무함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 인간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비정상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 앞에 선 인간으로서 결단을 통해 얼마 남지 않은 한정된 우리의 삶을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참고사항 : 자코메티(1901~1966)와 작품 <새장>

 

  스위스 화가. 조각가. 20세기 실존의 고뇌를 표현한 조각가로, 독특한 인물상으로 리얼리티에 도전하는 작품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 〈장대 위의 남자 두상〉(1947), 〈7명의 인물과 1개의 두상이 있는 구성(숲)〉(1950), 사무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장치를 설계했다. 1931년의 작품 <새장>의 주된 이미지는 유기체의 형상이다. 날개, 깃털 등이 있고, 새장은 반쯤 열려있다. 열려진 새장임에도 날아갈 수 없는 모순적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불길함이 드러난다.

 

 

▲작자 최승호(崔勝鎬, 1954~)

 

  시인. 강원 춘천 출생. 1977년 《현대 시학》에 <비발디>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세상의 모습을 죽음의 불길한 상징으로 읽어내면서 자본주의의 병폐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드러낸다. 시집으로 《대설 주의보》(1983), 《고슴도치의 마을》(1985), 《진흙소를 타고》(1987), 《세속 도시의 즐거움》(1990), 《고슴도치의 마을》(1994), 《그로테스크》(1999), 《모래 인간》(2000),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2003), 《북극 얼굴이 녹을 때》(2010)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