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惠江) 2020. 10. 3. 08:29

 

 

북어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들을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시원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 시집 《대설 주의보》(1983) 수록

 

 

◎시어 풀이

*케케묵은 : 물건 따위가 아주 오래되어 낡은.
*분대 : 보병 부대 편성의 가장 작은 단위.
*쾌 : 북어를 묶어 세는 단위. 한 쾌는 북어 스무 마리.
*변비증 : 대변이 대장 속에 오래 맺혀 있고, 잘 누어지지 아니하는 병.

*짜부라진 : 물체가 눌리거나 부딪혀서 오그라진.

*느닷없이 : 무엇이 나타남이 전혀 뜻밖이고 갑작스럽게.

*먹먹하도록 : 귀가 갑자기 막힌 듯이 소리가 잘 들리지 아니하도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식료품 가게에 진열된 ‘북어’를 통해 현대인의 무기력한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시로, 마지막 부분에서 비판의 주체였던 화자가 비판의 대상으로 바뀌는 참신한 반전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 ‘북어’는 시적 대상을 넘어서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없이 무기력하고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는 비판의 대상이 비판의 주체로 반전되어 화자의 반성을 끌어내고 있다. 즉, 북어를 통해 바라본 현대인의 모습이 시상의 전개에 따라 ‘북어=현대인=화자’로 바뀌고 있다.

 

  또한, 이 시는 ‘북어’에 인격을 부여하여 의인법으로 표현함으로써 시적 대상을 넘어서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무비판적으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활용하여 시적 대상인 ‘북어’를 생생히 묘사함으로써 추상적 주제를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 상황적 아이러니를 통해 비판적 주체인 화자가 비판의 대상으로 반전됨으로써 자신을 포함한 현대인의 무기력한 삶의 모습을 반성하고 비판하고 있다.

 

  연구분 없이, 23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8행에서는 식료품 가게에 진열된 ‘북어’의 모습을 묘사하고, 9~19에는 ‘북어’를 통해 무기력한 현대인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20~23행에서는 무기력한 자신의 삶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

 

  1~8행에서, 시적 대상인 ‘북어’는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손때 묻은’ 채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다. ‘밤’은 부정적인 시대를 의미하며, ‘먼지’와 ‘손때’ 역시 생명력을 상실한 부정적인 현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모습은 획일화된 북어의 모습으로 획일화된 현대 소시민을 상징한다. 여기서 화자는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라고 하여, 현대인의 두뇌가 이미 생명력을 상실하였음을 진술하고 있다.

 

  9~19행에서는 ‘북어’가 가진 특징을 통해 현대인들의 모습을 유추해 내고 있다. 우선 북어의 자갈처럼 ‘딱딱진 혀’는 현대인의 침묵을 의미한다.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입을 꾹 다물고 벙어리가 된 것이다. 이를 두고 화자는 ‘말의 변비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무덤 속의 벙어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북어의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은 현대인들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고정화되고 획일적인 사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빳빳한 지느러미’는 막대기처럼 하나로 고정화된 생각 때문에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의미한다. 그래서 화자는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라며, 건전한 비판의식 없이 삶의 지향점을 잃고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20~23행에 와서는 시의 반전이 일어난다. '북어'를 통해 비판 정신과 삶의 목표를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비판하던 화자는 ‘느닷없이’ 북어와 화자의 관계가 전도되면서 비판의 대상인 ‘북어’가 비판의 주체가 되어, 북어가 화자를 향해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세 번이나 반복하여 ‘너도 북어지’라고 하는 말에 화자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비판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화자 자신에게로 향한 것이다. 비판의 주체가 되어 현대인들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화자가 도리어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일상적인 소재인 ‘북어’를 활용한 비상한 발상으로 시대적 현실에 입을 다물고 사는 '북어'와 같은 우리 자신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 <대설주의보>가 그렇듯이, 그의 시는 경박하지도 유희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심각하고 진지한 어조로 나타난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시가 지성적 판단과 철학적 사유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자 최승호(崔勝鎬, 1954~)

 

  시인. 강원 춘천 출생. 1977년 《현대 시학》에 <비발디>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세상의 모습을 죽음의 불길한 상징으로 읽어내면서 자본주의의 병폐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드러낸다. 시집으로 《대설 주의보》(1983), 《세속 도시의 즐거움》(1990), 《북극 얼굴이 녹을 때》(2010)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