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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에 대한 명상 / 장정일

혜강(惠江) 2020. 8. 28. 05:58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장정일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5 큰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5개

  달걀 2

  빵가루 2컵

  소금 2작은술

  후춧가루 1/4작은술

  상치 4잎

  오이 1

  마요네즈 소스 약간

  브라운 소스 1/4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 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진다

  이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명상의 첫 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 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 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 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한 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놓는다.

  소리 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네 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 된 고기를 올려놓고 일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일분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렌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에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릿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치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릿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치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 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 수록

 

 

▲이해와 명상

 

  이 시는 장정일 시인이 1987년에 간행한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 수록된 표제작이다. 햄버거로 대변되는 미국 자본주의가 우리 삶에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소비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대 문명을 풍자하였다.

 

  이 시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무엇보다 이 시가 정말 길다는 것이다. 처음의 두 연과 마지막 한 연을 제외하면, 이 긴 시는 사실 햄버거를 만드는 법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도 있다. 시와 요리의 서로 다른 장르가 병렬되고 있으며, 명상의 과정과 요리의 진행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미국식 간식인 햄버거가 가정 요리로서 우리 일상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 상황과 시와 명상 대신 맛과 소비에 길들여지고 있는 상황을 동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시인이 이 시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1~2연과 마지막 12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1연에서 화자는 기존과 다른 것들에 대해서 명상하고자 한다.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것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서 명상하련다’라고 한다. 여기서 ‘금’은 단단한 것, 즉 변치 않는 가치를 말하며, ‘꿈’은 투명한 것으로 추상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그래서 화자는 이러한 기존의 가치가 대신에 물렁물렁한 것, 즉 가변적인 가치에 대하여 명상하겠다는 것이다.

 

2연에 오면, 물렁물렁한 것으로 ‘햄버거를 만드는 일’에 대하여 명상을 제안한다. 햄버거는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고,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것이다. 이 표현은 얼핏 보면 햄버거에 대한 예찬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어쩌자고’라는 시어로 볼 때 위의 표현은 예찬이 아니라 불편한 마음에서 비롯된 반어적인 표현이다. 햄버거는 빠른 속도로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패스트푸드의 대표 음식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과도한 열량을 섭취하게 하여 비만을 유발할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자는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는가’라고 한다. 이것은 햄버거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으로, 화자는 자본주의 사회를 대표하는 ‘햄버거’와 정신적 활동인 ‘명상’을 결합하여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3연부터 화자는 어찌하다 ‘금(단단한 것)이나 꿈(투명한 것)’과 같은 명상이 여의치 않은 세상이 되었는지, 아니면 시인의 책임이나 의무로 인해 물렁물렁한 그것들에 대해 명상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든지, 명상의 재료라 할 수 없었던 '햄버거 만들기'에 대한 명상을 시작한다. 이 긴 시는 사실 햄버거를 만드는 법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도 있다. 이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따르면 실제로 11연에 이르면 햄버거가 완성된다. 여기서 화자는 ‘햄버거 만들기’에 대한 명상이 시적 형식으로 형상화되면서 사회 비판성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햄버거 만들기’는 단순한 요리법이 아닌, 미국식 자본이 우리 삶을 요리하는 법으로 인식되고, 현대 문명사회가 소비문화에 길드는 법임을 드러내고 있다.

 

  햄버거가 완성되고 마지막 12연에서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 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라고 한다. 화자는 우선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 유익했고, 까다롭지도 않고 주의 사항이 많지도 않았고, 맛이 좋고 영양이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고 반어적(反語的)으로 표현하면서 명상을 마치고 있다.

 

  ‘햄버거 만드는 법’을 시 속에 등장시킨 이 시의 파격적인 형식 밑바탕에는 과거의 모든 정신적인 가치들이 무시되는 현재의 정신적, 문화적 풍토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추상적인 가치에 대한 신념과 아름다운 정서를 시로 표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 햄버거 한 쪽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 것이 시가 아닌가 묻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가 세계를 휩쓸 때, 우리는 흔히 미국 문화의 한 산물로서 청바지와 콜라, 맥도날드 햄버거를 예로 들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은 바로 자본주의적 가치에 충실한 나라 사람들이다. 이들은 편의주의와 감각적 만족만을 추구하는 가치관으로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이에 장정일 시인은 남다르게 시라는 장르가 지닌 관습성을 깨뜨리는, 한국 문학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낯선 양식의 시로 상상력과 실험성을 극대화하여 ‘햄버거’로 표상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

 

 

▲작자 장정일(蔣正一, 1962 ~ )

 

 

  시인·소설가. 대구시 달성 출생. 1984년 무크 《언어 세계》에 <강정 간다>로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작품 경향으로, 재기발랄한 도시적 감수성과 방법적 해체 기법을 통해 사회의 병적인 자본주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 《길 안에서의 택시 잡기》(1988) 등이 있으며, 소설로는 《아담이 눈뜰 때》(1990),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2)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