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마량포구, 해넘이·해돋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
서천 마량포구
해넘이·해돋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충남 서천 춘장대해수욕장 너른 백사장에서 갯것을 잡는 주민들. 아득하게 밀려 나간 썰물의 바다 위에 겹겹이 밀려드는 부드러운 파도가 그려내는 문양이 또렷하다. 춘장대해수욕장은 서천화력발전소 건설로 동백정해수욕장이 문을 닫게 되자 대체 해수욕장으로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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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짓 고즈넉한 춘장대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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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경 붉게 빛나는 백사장 황홀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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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 기벌포 ‘스카이 워크’ 오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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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숲 15m 허공서 펼쳐진 ‘장쾌한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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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 이동·제련소 중단에 쇠락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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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음’ 아닌 ‘날것의 멋’ 느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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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일몰’과 ‘첫 일출’을 한곳에서 감상하다
여행에도 유행이 있다. 여행 방식은 물론이고, 여행 목적지도 유행을 탄다. 지금은 시들하지만 한때 세밑 시즌 최고 여행지로, 당진 왜목마을과 함께 서천 마량포가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두 곳 모두 자그마한, 어쩌면 보잘것없는 서해의 포구마을. 왜목마을과 마량포에 관광객들이 몰려든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지는 해와 뜨는 해 모두를 볼 수 있다는 것. 마량포에서는 갈고리처럼 바다로 비쭉하게 나간 지형 덕에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로 한 해를 맞는 기대를 ‘같은 자리’에서 누릴 수 있다. 돌이켜보면 여행 목적지를 정하는데 ‘의미’가 중요했던 때의 얘기다. 맛있고 특별한 음식이나 근사하고 세련된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좋은, 여행에서 의미나 메시지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이즈음의 여행법에 미뤄보면 격세지감의 얘기다.
세밑에 유행이 다 지난 마량포구로 간다. 2019년 12월 31일 오후 5시 28분, 올해의 마지막 일몰과 2020년 1월 1일 오전 7시 44분, 내년의 첫 일출을 볼 수 있는 곳. 한 해의 교대를 앞두고 있는 그곳에서, 미리 하루의 교대를 경험한다. 물리적으로는 ‘자정을 넘으면’ 이튿날이지만, 정서적으로는 ‘해가 떠야’ 이튿날이다. 해가 떠올라야 비로소 새날이 시작되고, 새해가 시작된다는 얘기다.
겨울 아침 마량포구의 일출 전 하늘은 진청색으로 푸르고, 떠오르는 해는 유난히 더 뜨거웠다. 마량포로 들어서기 직전의 언덕 위 전망대에서 등대 너머의 바다와 그 바다 너머의 육지에서 이제 막 솟는 해를 본다. 수평선 위로 불쑥 솟지 않으니 동해의 일출에 비해 비장미는 모자라고, 포구의 경관도 남해처럼 아늑하거나 서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는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붉은 해의 고도가 높아지자 포구 앞바다의 수면이 은박지처럼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Sunset / 충남 서천 비인면 장포리 해변의 군함바위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
# 해프닝인가, 역사적 사건인가
마량포구가 특별한 건 노을과 일출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지, 일출이나 노을 풍경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마량포구에서 흥미로웠던 건 일출이 아니라, 200여 년 전인 마량포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다. 1816년 9월 4일. 마량 앞바다에 영국함대 소속 서양식 범선 두 척이 나타난다. 조선인이 목격한 최초의 서양 선박이었다. 범선이 나타나자 해군부대장 격인 ‘첨사’와 지금으로 치면 군수쯤 되는 ‘현감’이 배를 조사하겠다며 영국 함선에 올라탔다. 서로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영국 함장과 조선 관료의 첫 만남은 정중하고 우호적이었다. 배의 이곳저곳과 무기를 모두 다 보여준 함장은 첨사와 현감을 식사에 초대했다. 브랜디와 럼을 곁들인 식사자리에서 함장은 책에 관심을 보이는 현감에게 성경책을 선물로 줬다. 1611년 발간된 최초의 영어 완역판 ‘킹 제임스 성경’. 영어로 씌어있어 아무도 읽을 수 없었던 이 성경책이 바로 조선 땅에 최초로 전해진 성경이었다. 마량포에 ‘성경전래지기념관’이 들어선 건 이런 연유 때문이다.
기념관에는 당시의 영국 함장과 조선 관료의 만남이 자세히 복원돼 있다. 영국 함장은 고국으로 돌아가 은둔의 나라 조선과 일본 오키나와(沖繩) 일대 탐사기를 책으로 펴냈고, 책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다. 함장은 이 책에서 조선 관료와의 만남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해놓았다. 그 기록이 기념관 전시의 바탕이 됐다. 전시관에는 영국 함장이 현감에게 건네준 판본과 똑같은 성경책이 있다. 200여 년 전 영국 함장으로부터 받은 성경은, 조정까지 올라갔고 2품 이상의 재상들이 모여서 보고는 몇 장씩 뜯어 나눠 갖기도 하는 와중에 사라져 버렸다. 지금 전시 중인 성경책은 2016년 기념관 개관을 앞두고 서천군이 3억 원을 주고 미국에서 사 온 것이다.
‘최초의 성경 전래’는 우연한 사건 속의 한낱 해프닝처럼 느껴지지만, 함장이 쓴 탐사기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영국 사회에 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성경을 조선의 관료에게 전달해줬다’는 책 속의 문장 하나가 영국 선교사들을 조선으로 불러들였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마량포 성경 전래는 ‘사건’이라고 부르기에 합당한 무게를 지닌다.
▲ Sunrise / 충남 서천 서면 마량리의 마량포구 방파제 너머로 해가 뜨는 모습.
# 서천에서 가장 매혹적인 바다는 춘장대에 있다
서천에는 해수욕장이 여럿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해변다운 해변은 춘장대해수욕장이다. 사실 1980년 이전까지만 해도 서천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은 따로 있었다. 마량포구 뒤쪽에는 수백 년 묵은 여든다섯 그루 동백나무 숲 언덕 위의 정자 동백정이 있었고, 그 아래에 근사한 해수욕장이 있었다. 서천에서 최고로 치던 동백정해수욕장이다. 1978년 서천화력발전소 건설이 시작되면서 해수욕장은 사라졌다. 그때 개발된 곳이 바로 춘장대였다. 춘장대(春長臺)란 이름은 해수욕장 인근 토지의 팔할 쯤을 소유한 땅 부자의 호(號)인 ‘춘장(春長)’에서 유래됐다. 2㎞ 남짓의 해변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썰물의 때와 낙조의 시간이 맞아떨어질 때, 광활하게 펼쳐진 해변 백사장이 지는 해를 받아 붉게 빛날 때가 가장 아름답다.
단정하게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동백정은 동백과 낙조 풍경으로 이름난 서천의 명승이다. 하지만 정자 뒤쪽으로는 수명을 다해 가동이 중단된 서천화력발전소가 흉물처럼 배경으로 서 있고, 정자가 세워진 언덕 아래는 신서천화력발전소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운치 있는 정자가 아니라, 마치 무슨 공단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가동 중단된 화력발전소가 철거되고 새 발전소가 완공되고 주위가 정리되면 모를까, 이즈음이라면 ‘가보라’고 권하기가 좀 망설여질 정도다.
마량리 포구와 춘장대해수욕장 사이에는 꽃게와 전어로 이름난 홍원항이 있다. 항구에서 매일 오전이면 밤새 조업으로 잡아온 생선의 경매가 이뤄진다. 이즈음에는 제철을 맞은 박대와 아귀, 물메기, 가자미, 갑오징어 등이 거래된다. 경매가 끝나자마자 상인들이 항구 이곳저곳에 좌판을 펴고 경락받은 수산물을 펼쳐놓는다. 식당도 줄지어 늘어서 있어 홍원항에서 거래되는 펄펄 뛰는 싱싱한 갯것들을 맛볼 수 있다.
서천의 해변을 또 한 곳 꼽으라면 장항 기벌포 해안이다. 기벌포는 서천군 장항읍의 해안 일대를 이르는 명칭이다. 통일신라와 당(唐)나라 사이의 전투, 나당 전쟁 최후의 결전이 이곳에서 있었다. 앞서서 백제 부흥군과 일본 연합군이 나당연합군과 맞붙었고, 그 전에는 나당연합군과 백제 수군이 이 바다에서 맞섰다. 고대국가의 전쟁이 지나간 기벌포의 바다는 해안가 송림 숲 15m 허공에다 놓은 ‘스카이워크’ 위에서 장쾌하게 내려다보인다. 장항 스카이워크는 경관뿐만 아니라 역사를 내려다보는 자리다.
#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곳의 매력 찾기
▲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현장으로 널리 알려진 충남 서천의 신성리 갈대밭. 갈대 우거진 금강 하구의 습지 위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덱을 놓았다. |
서천에는 낡고 오래된 것이 유난히 많다. 금강하굿둑이 세워지고, 장항선이 옮겨가고, 제련소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도시는 급격하게 쇠락했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도시는 과거의 시간에 갇혔다. 한때 번성했던 도시가 그럴 정도라면, 소읍 축에도 못 끼는 서천의 시골 마을은 오죽할까.
미닫이 유리문에 셀로판지로 붙인 상호가 흔적처럼 남아있는 ‘옥산집’은, 백열등 어른거리던 대폿집이었을까. 아니면 펄펄 김이 나는 국밥을 말아주던 국밥집이었을까. 문 닫은 판교철공소 옆의 녹슨 파란 철 대문 집은 철공소를 끝까지 지켰던 이의 살림집이었을까.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며 ‘저 하늘에도 슬픔이’ 같은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이 ‘만원사례’ 간판을 내걸던 시절, 이곳 풍경은 어땠을까. 낡고 오래된 극장은 호신술이며 차력, 쌍절곤 따위를 가르치는 무술 도장이 됐다가 이제 그마저도 문을 닫은 지 십수 년이 됐다.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 여기는 한 세대, 아니 두 세대쯤 전의 풍경이 띄엄띄엄 남아있는 쇠락한 마을이다. 옛 장항선 열차가 구불구불 옛 철로를 달리던 시절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한복판에는 기차역이 있었고, 그로부터 또 200년 전쯤에는 떠들썩한 우시장도 열렸다. 지금은 모두 흩어지고, 허물어지고, 또 지워졌지만 말이다.
‘도시재생’의 기치를 들고 오래 묵은 옛 공간이 명소가 된 곳이 적잖지만, 여기는 그런 곳들과는 사뭇 다르다. 오래됐으나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곳. 그래서 진짜 ‘날것’의 느낌이다.
‘낡음으로 치장한’ 세련되고 감각적인 도시재생의 공간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현암리의 공간은, 무심한 눈으로는 매력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현암리의 매력은 ‘발견’의 영역에 속한다. 현암리의 ‘낡음’은 아직 해독되지 않아서 어떤 이들은 이곳을 추레한 곳으로 읽고, 다른 이들은 일상의 누추함을 발견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오래된 시간 저편의 추억을 회상한다. 정의되지 않은 공간의 다층적인 느낌이야말로 현암리의 매력이다.
# 자장면, 콩국수, 냉면…노포의 맛
현암리에서 오래됐으되 여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건 음식점이다. 잰걸음으로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렇다고 미련 없이 문을 닫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쯤에 식당은 있다.
현암리 식당의 중심에 중국집 ‘동생춘(同生春)’이 있다. 팔순을 내다보는 60여 년 경력의 수타면 장인이 자그마치 47년째 같은 자리에서 운영하는 중국집이다. 충남 예산의 화교가 하던 중국집에서 일하며 수타 기술을 배워 예산의 중국집 ‘동생춘(東生春)’과 똑같은 상호로 여기 문을 열었다가 상호의 한자만 ‘東’에서 ‘同’으로 살짝 바꿨단다. 수타면을 쳐대는 게 보통 체력소모가 큰일이 아닌데, 일흔일곱의 나이라는 게 도대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차게 수타 반죽을 쳐서 순식간에 가늘게 면발을 뽑아낸다. 동생춘은 홀 안에 적어도 3명은 있어야 자장면 맛이라도 볼 수 있다. 손으로 쳐서 면을 뽑으니 적어도 3인분 정도의 주문이 들어가야 밀가루를 치대기 시작한다. 그러니 밥때를 지나서 혼자 이곳에서 자장면을 받는 행운은, 비슷한 처지의 손님이 적어도 2명 이상이 더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1978년에 개업한, 콩국수를 내는 진미식당의 명성도 동생춘 못지않다. 봄부터 여름까지 식당 앞에는 동네 주민들 수보다 더 많은 손님이 줄을 선다. 날이 더울수록 줄은 길어진다. 메뉴는 콩국수와 막국수, 그리고 콩전. 이렇게 세 가지다. 진한 콩물의 콩국수도 좋고, 누룽지처럼 구워내는 콩전의 고소한 맛도 훌륭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장사는 4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딱 5개월만 하고 문을 닫는다. 진미식당의 콩국수는 2020년 4월 15일이나 돼야 맛볼 수 있다. 진미식당 건너편에는 둘 다 ‘원조’의 간판을 높게 매단 ‘수정식당’과 ‘삼성냉면’이 마주 보고 있다. 둘 다 도토리가루와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뽑아 냉면을 낸다.
▲서천 판교면 현암리의 골목에는 쇠락한 건물들이 유적처럼 남아 시간을 되돌린 것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진 왼쪽은 건강원과 닭집이 들어서 있던 건물, 오른쪽은 두 자릿수 전화번호를 쓰던 옛 주조장.
# 우시장과 사진관, 술도가의 전설
판교리에는 우시장이 있었다. 충남 지역의 3대 우시장에 들 정도였다. 판교 우시장은 일제의 통제로 10일마다 장이 열렸으나 농사일 비중이 작고 소가 새끼를 낳는 시기인 7, 8월 만큼은 5일 장으로 운영됐다. 우시장이 서는 날이면 인근 홍성이며 광천, 공주 등지에서도 소를 사고팔기 위해 모여들었다. 장날 우시장에는 1000마리 넘는 소가 말뚝에 매어져 있었단다. 우시장에는 소를 사고파는 이들은 물론이고, 이 장에서 저 장으로 소를 몰고 다니는 ‘소몰이’들이 있었다. 우시장 근처에는 이들을 상대로 하는 주막을 겸한 국밥집이 수십 곳이나 됐다. 이처럼 늙고 쇠락한 마을에도 ‘흥청거렸던 옛날’이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지만 말이다.
우시장이 섰던 자리에는 ‘진흥농기계’란 낡고 오래된 농기계 수리센터가 영업 중이다. 소가 있던 자리를 고장 난 경운기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우시장 근처에 일본식 2층 목조주택이 있다. ‘장미사진관’이라고 부르는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일본인 지주가 살던 곳이었다. 당시 여기 동면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불과 11명. 한 줌도 안 되는 이들이 농토와 상권을 장악해 동면 사람 5500여 명의 생계를 쥐락펴락했다. 해방 후 판교 우시장과 오일장 세모 시장의 번성으로 여관으로 쓰였다가 뒤에 증명사진과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장미사진관이 됐다. 사진관은 진즉 문을 닫았지만 상호가 곧 건물의 이름이 돼서 지금까지 전해진다.
장미사진관 근처에는 ‘동일 주조장’이 있다. 2000년까지 3대째 운영해오던 술도가다. 쌀 방앗간과 함께 술도가를 운영하며 막걸리를 빚었다. 주조장 간판에 쓰인 전화번호가 ‘45’번이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의 두 자릿수의 번호다. 그러고 보니 골목 초입 한약방의 전화 번호는 ‘29’번이었고, 삼화정미소는 ‘52’번이었다. 골목을 걷다 보면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시간 저편의 과거와 통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한 해를 보내며 건너가는 지금의 시간도, 훗날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되리라.
■ ‘어제’와 ‘내일’이 있는 곳
곶처럼 바다로 비쭉 밀려 나간 충남 서천의 마량포구에서는 일몰도, 일출도 볼 수 있다. 어제와 내일, 묵은 해와 새해의 교대를 한자리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몰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낡고 쇠락한 서천의 과거를, 그리고 일출은 갯벌 매립 대신 생태보전의 가치를 택한 서천의 두근거리는 미래를 은유하는 듯하다.
■ 여행정보
충남 서천읍 한복판에는 ‘서천특화시장’이 있다. 활어와 선어, 건어물 등이 중심이 된 시장이다. 상설시장이지만 오일장(2, 7일)에 맞춰가면 시장 주변 노천에서 흥청거리는 전통시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장날이면 상인들의 좌판이 겨울에도 특화시장 길 건너편 골목까지 빼곡하게 들어찬다. 이즈음에는 겨울에 더 감칠맛을 내는 조개류를 비롯해 해삼, 멍게, 물메기, 갑오징어 등이 흔전만전이다. 시장 2층에는 새조개 데침 등을 내는 식당도 여럿 있다.
서천에서 손꼽히는 맛집으로는 아귀탕과 아귀찜으로 이름난 할매온정집(041-956-4860), 한방녹두삼계탕으로 알려진 남경가든(041-953-7612), 조개를 가득 넣고 끓인 시원한 맛의 칼국수를 내는 ‘웰빙칼국수’(041-952-3145) 등이 있다. 식당이 좀 허름하긴 하지만 갈치 백반을 시키면 말린 생선 대여섯 가지를 함께 내놓는 서천읍의 ‘신옛집’(041-951-7574)이나 겨울 무를 넣고 조려낸 고등어조림이 입맛을 당기는 마량포구 근방의 이모네밥상(041-952-0233) 등은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싶은 집이다.
<출처>2019. 12.20 /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