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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라이트월드, 어둠이 내리면 빛으로 생명이 깨어나다

혜강(惠江) 2019. 1. 16. 19:50

 

충주 라이트월드

 

어둠이 내리면 빛으로 생명이 깨어나다.

 

   충주 = 글·사진 박경일 기자

 

 

 

 

 

 충북 충주로의 겨울 여행을 안내하는 것은 긴 겨울밤을 밝히는 화려한 불빛이었습니다. 남한강의 물길을 끼고 들어선 충주 라이트월드에 켜놓은 루미나리에 불빛을 만나러 간 길이었습니다.

 

 지난해 4월에 문을 연 충주 라이트월드를 이제야 찾아간 것은, 그곳이 ‘미완성’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의 개장으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을 확충하고 불빛을 늘려가면서 생물처럼 진화해 가겠다는 게 충주 라이트월드의 애초 포부였습니다. 서툰 민자개발 방식과 시행착오, 그리고 정치적 오해와 갈등으로 애초의 포부는 빛바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남한강 변의 겨울밤을 밝히는 화려한 불빛은 아름다웠습니다.


# 겨울에 더 찬란한 빛의 건축물

 밤을 화려하게 밝히는 루미나리에를 흔히 ‘빛의 조각’이라 부른다. 조명을 이용해 건축물을 비롯한 갖가지 형상을 만들어내는 루미나리에의 시작은 ‘왕의 행차’였다. 16세기 이탈리아 나폴리왕국에서 왕가의 행차를 기념하며 루미나리에는 시작됐다. 빛이 더 화려해지면서 루미나리에는 왕이 아닌 성인(聖人)에게 바쳐졌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야말로 초월적인 정신을 상징하는 데 제격이었다.

 전기 조명을 활용한 3차원의 빛 축제로 발전한 루미나리에는, 이제 종교와 숭배가 아니라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관광 매력물이 됐다. 이웃 일본의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시에는 고베 대지진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1995년 12월에 처음 개최됐던 ‘고베 루미나리에’의 전통이 있고, 미에(三重)현 구와나(桑名)시에는 테마파크 나바나노사토의 ‘일루미네이션 축제’가 있다. 규모나 화려함이 그만큼은 못하지만, 우리에게도 화려한 불빛의 루미나리에가 있다. 지난해 4월 충북 충주 세계무술공원에 문을 연 ‘충주 라이트월드’다.

 해가 짧은 겨울은 어둠이 일찍 찾아온다. 겨울에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한 루미나리에를 권하는 건 이 때문이다. 루미나리에는 세밑의 들뜬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지만, 연말이 아니라도 긴 겨울밤 루미나리에의 불빛은 유난히 선명하고 맑다. 더구나 이즈음은 비수기라 입장료도 반값이고, 관람객도 적어 공원 전체를 마치 전세 낸 것처럼 즐길 수 있다. 매점 등 편의시설이 문을 열지 않아 불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충주 라이트월드에는 빛으로 만든 다양한 구조물이 있다. 곧게 뻗은 도로에 아치형 구조물을 설치해 ‘빛의 터널’처럼 보이도록 하는 전통적 기법의 갤러리아를 비롯해 타지마할, 크렘린궁, 에펠탑, 런던 브리지 등 세계 각국의 유명 건축물을 빛으로 만들어낸 축소 모형으로 가득하다. 전구로 만든 사슴이나 판다, 코끼리 등의 동물도 있고, 다양한 형태의 곤충을 빛으로 정교하게 만든 공간도 있다. 이런 조명 조형물들은 초저녁보다는, 어둠이 짙어졌을 때 빛을 더 발하니 되도록 늦은 밤에 찾아가는 게 좋겠다.

 충주 라이트월드는 이른바 ‘플랫폼 형’ 테마파크를 표방한다. 한 번의 시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빛을 주제로 한 다양한 시설이 계속 확충되는 시설이란 얘기다. 개장보다 개장 이후가 기대됐던 이유다. 하지만 개장 초부터 선거 바람에 휘말려 정치적 특혜 시비와 고발 등이 제기되면서 감사원의 공익감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쳐 관광객들을 숙박으로 이끄는 관광명소로 활용해도 모자랄 판에 정쟁과 소송에 휩싸여 환한 전구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가는 듯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충북 충주의 중앙탑 사적공원을 끼고 있는 남한강 구간에 놓인 콘크리트 부교. 부교는 조정경기장 방송 중계를 위해 강 위에 놓은 것인데, 산책 코스로 훌륭하다. 충주시가 부교에 조명을 설치해 지난해 12월 29일 처음 불을 켰다. 불을 켜면 강변의 정취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빚어낸다.

 

 

# 겨울밤 강변의 은은한 불빛

 충주 라이트월드가 요란한 원색 불빛으로 한껏 화려함을 뽐내는 곳이라면, 충주 중앙탑이 서 있는 중앙탑 사적공원은 물을 끼고 있는 은은한 겨울밤 야경이 낭만적인 곳이다.

 중앙탑은 충주 탑평리의 칠층석탑을 말한다. 정식 명칭 대신 충주 사람들이 모두 ‘중앙탑’이라 부르는 이 석탑은 통일신라 때 세운 것이다. 중앙탑이란 이름은 한 편의 전설에서 연유한다. 신라 원성왕이 국토의 중앙이 어딘지를 알아보기 위해 보폭이 같고 걸음의 속도도 같은 사람 둘을 남과 북의 끝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시켜 그 둘이 만난 자리에다 이 탑을 세웠다는 얘기다. 탑을 세운 자리가 국토의 정중앙이었으니 그때부터 중앙탑이라 불려왔다는 얘기다. 석탑의 높이는 신라 탑 중에서 가장 높은 15.4m. 중앙이란 묵직한 의미답지 않게, 큰 키에 날씬한 체구의 탑에서는 날렵한 상승감이 느껴진다.

 ‘국토의 중앙’이라는 것에 충주는 큰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다. 이러저러한 충주의 단체마다 ‘중원(中原)’이란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도 그래서이리라. 그러나 중원은 한편으로 그곳을 차지하고자 하는 이들이 뺏고, 빼앗겼던 치열한 격전지였다. 태평성세에는 나라의 중심이었던 곳이 전시에는 칼과 칼이 부딪치는 변방이 됐던 것이다. 충주 북쪽의 고구려비와, 이주 신라 귀족의 것인 남쪽의 누암리 고분군이 대치하듯 남아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칠층석탑 주변에는 야외조각공원이 있다. 공원은 워낙 볕이 잘 들어 겨울에도 환하고 푸근한 느낌이다. 공원 옆에는 조정경기장으로 활용되는 남한강의 물길이 있다. 저물 무렵이면 수면이 거울처럼 잔잔해지는 고요한 구간이다. 그 물 위에 부유식 다리가 놓여 있다. 조정 경기 중계를 위한 방송 카메라가 드나들도록 만들어놓은 다리인데, 이 다리가 물 위를 걷는 ‘운치 있는 산책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밤이면 산책로 다리에 색색의 불이 켜진다. 전구의 색이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빠르게 점멸하기도 하면서 겨울 강의 낭만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조명 켜진 다리 위를 걸으면, 마치 흐르는 빛 위를 걷는 듯하다. 다리에 조명 공사를 하고 불을 켠 지 이제 보름 남짓. 아는 이들이 적어서 연인들이 호젓하게 데이트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 빈 절터에 가득한 겨울의 박하 향기

 

 

▲ 사진 위에서부터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 기단의 중심에서 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비로자나불. 굵게 돋을새김한 구름과 용의 질감으로 국보의 격을 보여주는 청룡사지 보각국사 부도 탑. 충주 라이트월드에 빛으로 세워놓은 타지마할과 코끼리. 수안보파크호텔 아래 숲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예배당 성봉 채플.

 충주 외곽에도 겨울 여정에 어울리는 곳이 몇 곳 있다. 그중 첫 번째로 꼽을 만한 곳이 월악산 남서쪽 자락의 미륵대원지다. 미륵대원지는 대원사라는 사찰 겸 관리들의 숙소인 원(院)이 있던 자리다. 석굴사원을 배경으로 키 큰 석조여래입상과 오층석탑, 석등, 거북 모양의 석물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눈을 감은 채 매끈한 얼굴을 하고서 특이하게도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석조여래입상의 호리호리한 모습이 특히 인상적인 곳이다.

 미륵대원지는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했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인 하늘재 초입에 있다. 하늘재는 ‘하늘’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가장 높은 고갯마루가 해발 525m에 불과하다. 인근에 포암산과 조령산, 주흘산 등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큰 산들이 있음에도 이만한 높이의 고개에다 왜 ‘하늘’이란 이름을 붙여줬을까.

 짐작되는 추측 중의 하나. 하늘재 이쪽이 충북 충주의 미륵리고 고개 너머 저쪽은 경북 문경의 관음리다. 미륵은 내세를, 관음은 현세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미륵리와 관음리 사이의 고개는 백두대간의 물리적인 공간을 넘는 것과 동시에 내세와 현세라는 관념적 공간을 넘나드는 길로 해독됐을 법하다. 하늘이란 이름은 그래서 붙여진 게 아닐까. ‘홍건적의 난’으로 몽진하던 고려 공민왕도, 신라 망국의 한을 품은 마의태자도 여기 하늘재를 넘었다. 공민왕은 충주에서 문경으로 하늘재를 넘었으니 내세에서 현세로 내려갔던 셈이고,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향하면서 거꾸로 문경에서 충주로 향했으니 현세에서 내세로 올라갔던 셈이다.

 미륵대원지는 지난 2014년부터 보수 중이다. 보수가 끝난 석조 여래입상은 공사용 가림막 속의 철제 비계로 가둬져 있고, 입상 주위의 ㄷ자형 석실은 다 해체돼 이제야 하나 둘 맞춰지고 있으니 보수가 끝나는 건 기약이 없다. 석물들만 남아 있던 빈 절터인 데다 석불과 석굴도 보수 중이지만, 미륵대원지가 허전하지 않은 건 석등과 석탑, 그리고 거북 모양의 귀부에서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소박했으되 간절했을 기원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박하 향이 나는 듯한 겨울 월악산 자락의 청량한 기운도 그곳까지 간 보람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미륵대원지까지 간 길이라면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도 놓치지 말자. 석탑은 충주가 아닌 제천 땅에 있지만, 미륵대원지로부터의 거리가 5㎞ 남짓에 불과해 차로 7분이 채 안 걸린다. 석탑은 1000년 전쯤에 빈신사라는 절에 세워졌는데, 아홉 층 중 오 층까지만 남아 있는 석탑의 기단 네 모서리에는 사자를 한 마리씩 배치했고, 가운데에는 두건을 쓴 비로자나불을 앉혀놓았다.


# 번성했던 옛 나루의 풍경

 충주의 남쪽에 미륵대원지와 사자빈신사지 석탑이 있다면, 충주의 북쪽 소태면 오량리에는 청룡사지 보각국사 부도 탑이 있다. 부도의 빼어난 미감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아 발길이 뜸한 곳이다. 부도를 여기 남긴 보각국사는 태조 이성계의 스승. 고려 말 당대의 고승이었던 보각국사를 기리는 부도인 만큼 균형미도 탁월하고 탑을 깎은 솜씨도 훌륭하다. 부도 몸체에 두껍게 돋을새김한 구름과 용의 두툼하고 풍성한 질감이 특히 인상적이다. 한눈에도 ‘국보의 격’이 느껴지는 탑은 고즈넉한 솔숲 가운데 있어서 더 매혹적이다. 국보인 부도 탑 앞에는 사자 석등이 있고 뒤에는 탑비가 세워져 있는데 석등도, 탑비도 모두 보물이다. 국보인 부도가 앞뒤로 보물 하나씩을 호위받듯 거느리고 있는 격이다.

 충주 시내에서 청룡사지로 가는 길에 거치게 되는 곳이 목계나루다. 옛 목계나루에서 느끼게 되는 건 ‘자취’가 아니라 ‘무상함’이다. 나루는 쇠락해서 이젠 아주 흔적조차 사라졌다. 대체 어디가 나루였다는 것일까. 한때 목계나루에는 산촌과 농촌, 어촌의 상품이 한자리에 모이고 선부와 떼꾼, 배 목수, 객주, 짐꾼이 모여들면서 배가 닿을 때마다 ‘갯벌장’이 펼쳐졌다고 했다. 1908년부터는 정기적으로 오일장이 섰다. 그 바람에 강변의 목계마을은 번성했다. 한창때는 800호의 집이 들어섰으며 마을 앞 나루에는 100여 척이 넘는 상선이 집결했다.

 목계나루 선주들은 거상의 반열에 오르는 등 부자가 대부분이었다. 마을이 흥성이던 시절에는 기생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는 권번과 먼 길을 다니는 소 장수를 위한 마방까지 있었다. 목계가 누렸던 영화는, 그러나 고작 30년이 전부였다. 그 사이에 충북선 열차가 개통하고 자동차가 등장했으며, 목계다리가 놓였다. 잦은 수해와 6·25 전쟁도 목계가 쇠락하는 이유가 됐다. 번성의 불은 서서히 사그라든 게 아니라, 하루아침에 꺼지고 말았다. 마치 물을 끼얹은 것처럼 말이다.

 목계의 오일장이 문을 닫은 건 1938년의 일이다. 1968년 목계대교가 놓인 뒤에는 나루는 숨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이른 봄이면 마포에서 거슬러온 새우젓과 소금을 가득 실은 크고 작은 범선들이 닻을 내리고, 새우젓과 소금을 팔며 이 바닷물처럼 불어나는 여름을 기다리던 시절의 얘기는 이제 말해줄 사람도 없다. 목계나루의 북적이던 모습은 이제 강변 언덕의 ‘강배 체험관’에 전시된 빛바랜 흑백사진과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 뜨끈한 온천과 아름다운 채플


 


 

겨울 여정의 마무리는 온천이 제격이다. 충주에는 수안보 온천이 있다. 전국의 온천에 순위를 매긴다면 충주의 수안보는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든다. 수안보 온천을 이렇게 평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온천이라도 물 온도가 낮아 물을 데워 쓰는 곳이 태반인데, 수안보의 경우는 섭씨 53도로 용출하는 온천수를 식혀서 쓴다. 온천수를 관리하는 충주시가 수안보의 20여 개 온천에 똑같은 온천수를 공급하니, 이른바 ‘원탕’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강점이다. 추운 겨울날에 수안보를 찾아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글 수 있는 건 겨울 충주 여행이 선사하는 행복감 중 하나다.

 수안보에는 온천만 있는 건 아니다. 작고 아름다운 예배당 ‘성봉 채플’도 있다. 예배당은 수안보파크호텔로 올라가는 굽잇길 초입에 있다. 수안보파크호텔로 가는 도로변의 예배당에는 주차장도 있지만, 울타리로 삼은 숲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우선 수안보파크호텔까지 올라간 뒤에 거기서 ‘성봉 채플 가는 길’이란 표지판을 따라 오솔길을 걸어 찾아가는 편이 낫겠다. 줄곧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오솔길에는 지난가을의 낙엽이 푹신한 융단처럼 깔렸다.

 성봉 채플은 한국교회 성결교단의 이름난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를 기념하는 예배당이다. 함경도 출신의 이 목사는 1936년 일본에서 신학 공부를 한 뒤 목사 안수를 받고 만주 지방 선교사로 사역하다 해방 이후 귀국한 뒤 전국의 어려운 교회를 찾아다니며 천막을 치고 순회 부흥집회를 열었다. 6·25 전쟁 직후에는 고아원과 한센병 환자촌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어디서든 그의 기도는 열정적이었다.

 성봉 채플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9년 만인 2004년 지어졌다. 그를 기리는 예배당이 하필 이곳에 지어진 건 수안보파크호텔을 계열사로 거느린 한국도자기 김동수 회장의 부인 이의숙 씨가 이성봉 목사의 셋째 딸이기 때문이다. 이 씨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짓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채플을 다녀보고서 사비 5억 원을 들여 숲 속 산책로에다 이국적이면서 단정한 지금의 성봉 채플을 지었다.

 성봉 채플은 24시간 개방해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가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주일이면 수안보파크호텔 직원과 투숙객, 인근 여행객들이 이곳에 모여 오전 9시와 오후 3시 두 차례 예배를 드린다. 성봉 채플은 종교에 관계없이 그 앞에 선 이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겨울의 침묵과 소박한 건축적 미감만으로도 경건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출처> 2019. 1. 16 /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