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전골 편>
격식 없이 둘러앉아 먹는 곱창전골…
씁쓸하고 쫄깃하고 고소하며 시원
곱창을 먹는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단백질이 부족했던 태곳적, 동물 내장을 함부로 버릴 수 있는 민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먹고살 만해지면서 세척 등 손이 많이 가는 내장 부위보다 살코기를 점차 선호하게 되었으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탈리아의 트리파(Tripa), 영국의 해기스(Haggis), 프랑스의 보댕(Boudin) 등 내장을 다룬 요리가 남아 있지만 대체로 서양에서도 내장 요리를 먹기 어렵다. 그네들의 살림이 한국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훨씬 나았기 때문은 아닐까? 지독한 가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알 수 없는 우연 때문이었는지, 한국인은 곱창에 대한 취향을 발달시켰다. 격식을 차리고 각을 세우기보다는 여럿이 양철통 같은 곳에 둘러앉아 지글거리며 굽거나 큰 냄비에 철철 끓여 먹는다. 찬바람이 불고 먼지가 쌓이는 요즘 같은 날에는 역시 얼큰한 전골에 더 마음이 간다.
충무로 언덕에 있는 진고개
충무로 언덕에 있는 진고개는 한식의 오래된 백과사전 같은 곳이다. 1963년 문을 연 이곳에는 보쌈김치, 냉면, 갈비찜 등 외국 관광객이 보통 한식이라고 여기는 거의 모든 음식을 내놓는다. 그중 조금 튀는 메뉴가 곱창전골이다. 저녁에 오면 꽤 많은 테이블에서 붉고 뜨거운 전골이 끓고 있다. 이 집 음식이 대체로 그렇듯 살짝 단맛이 도는 편이다. 그것은 설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안에 든 각종 채소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애호박, 당근, 파와 버섯 등 어머니가 건강에 좋다며 밥상에 올려놓는 것들이 잔뜩 들어가 있다. 육수를 넣고 자글자글 끓이다 보면 우동 사리 하나 넣어 먹어도 좋다. 하얀 면발이 국물에 몸을 감고, 뿌연 연기가 올라오면 그 사이로 앞자리에 앉은 이가 보인다. 그리고 문득 그이에게 뭐라도 털어놓고 싶어진다.
삼성역 '중앙해장'
삼성역에 새롭게 자리 잡은 '중앙해장'은 강남권에서 곱창전골로 줄을 세우는 집 중 하나다. 마장동에 연고가 있는 주인장이라선지 곱창의 질과 양에는 자존심이 있다. 못해도 200평은 넘어 보이는 널따란 식당에 매일 사람들이 가득 찬다. 하얀 셔츠와 블라우스에 국물이 튈까 앞치마를 맨 직장인들은 말하고 먹고 마시고를 반복한다. 자정 넘어서도 차가 막히는 강남이라설까? 이 집은 일요일 밤을 빼놓고 24시간 문을 연다. 가스불도, 사람도, 위장도 쉬지 않는 강남이다.
도봉산 자락 '삼오정'
강남에서 멀리멀리 올라가 도봉산 자락에 가면 47년째 영업 중인 '삼오집'이 있다. 도봉산 등산객과 단골과 혹은 뜨내기가 좌우 앞뒤로 앉아 기름을 튀기며 소 내장을 굽고 벌건 국물을 끓인다. 곱창도 곱창이지만 이 집은 곱창전골을 빼놓고는 말이 안 된다. 두부, 버섯, 파, 곱창이 지층을 이루며 쌓인 냄비에 오래 불을 댄다. 분 단위로 맛이 바뀌는 이 음식이 무르익는 시간은 대략 20~30분이다. 그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국물을 떠 입에 넣으면 오래 묵어 흉터처럼 얼룩 진 응어리가 씻겨 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냄비 밖으로 넘쳐나는 건더기 앞에서는 누군가가 웃으며 내뱉은 악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전화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씁쓸하고 쫄깃하고 고소하며 시원한 이 음식을 어린 병사처럼 푸짐히 먹고 배를 든든히 채울 뿐이다. 밤이 늦고 새벽이 이를 때까지 지친 몸이 허기지지 않도록, 하나뿐인 마음이 싸늘히 식지 않도록.
★출처 : 2018. 12. 7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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