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인릉, 대모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조선 왕조 태종과 순조의 능
헌인릉
대모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조선왕조 태종과 순조의 능
글·사진 남상학
6월 중순을 지나니 장마가 올 건지 날씨가 몹시 무덥다. 이런 날은 숲속 산책길이 최고여서 헌인릉의 탐방하며 걸어보기로 했다. 절대 권력을 지녔던 왕릉은 오랜 기간 보호되어 왔기에 오늘날 문화유산으로 남게 되었고, 주변의 우거진 숲은 우리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귀중한 자연자원으로 남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헌인릉은 조선 제3대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무덤인 헌릉과 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의 무덤인 인릉을 합쳐 부르는 것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의 남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1970년 5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94호로 지정되었으며, 여러ㅏ 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 매표소를 들어서면, 먼저 인릉을 만나게 되고, 오른쪽 우거진 오리나무 숲 사이로 난 데크 길을 한참 걸어 들어가면 헌릉을 만나게 된다. 두 왕릉 증에 헌릉은 선대왕의 무덤이고 조성연대가 무려 400년 이상 차이가 나므로, 오늘 나의 탐방 순서는 먼저 헌릉을 둘러보고 헌릉과 인릉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걸은 다음 나오면서 인릉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오리나무 숲(생태보존지역)
정문으로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헌인릉으로 가는 길에는 오리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태종이 살아생전에 가뭄이 심하여 ‘죽어서라도 비를 내리도록 하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래서인지 헌릉에는 아름다운 오리나무 숲에 둘러싸인 습지가 있다.
오리나무는 다습하고 비옥한 저습한 지대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헌인릉 입구 쪽 저지대에는 울창하게 오리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이 오리나무 숲은 서울시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 오리나무 숲속에는 곳곳에 수로가 산재해 노란물봉선, 둥굴레, 붓꽃 등 다양한 습지식물들이 번성하고 서울시 보호종인 오색 딱다구리·제비·꾀꼬리·박새 등이 출현하는 지역이다. 이 오리나무림 속에 걷기 쉽도록 목재 데크로 만들어 놓아 습지에 사는 식물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 이 지역 내에서 야생 동식물을 포획하거나 토석을 채취하는 등 생태계 보전에 해를 끼치는 모든 행위가 금지된다.
●헌릉
- 조선 제3대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
오리나무 숲길 끝에 이르면 온쪽 산언덕 위에 자리한 헌릉이 시야에 들어온다. 헌릉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1367~1422)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다. 능은 건좌손향(乾坐巽向)의 동원쌍봉(同原雙封)으로 이루어졌다.
태종은 조선왕조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함흥 귀주동에서 탄생하였다. 본명은 이방원이다. 어린시절부터 학문과 무예에 뛰어났으며, 정치와 군사에 두각을 나타내어 조선왕조의 개국에 큰 공을 세웠으며, 두 차례 왕자의 난을 일으킨 뒤, 그의 형인 정종이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1400년(태종 즉위)에 왕위에 올랐다.
그는 통치기간 동안 강력한 왕권으로 여러 가지 중요한 개혁과 정책을 추진하여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중앙집권 체재를 확립하였으며, 호패법 시행, 사병 혁파, 토지제도 개혁 등을 실시했다. 자기의 아들인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422년(세종 4)에 천달방 신궁에서 56세로 승하한 후 원경왕후 옆에 묻혔다.
원경왕후 민씨는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이다. 1365년(공민왕 14)에 개성에서 태어나 태조 즉위 후 정녕옹주에 봉해졌다. 1400년(태종 즉위) 정빈에 책봉되고 정비에 진봉되었다. 1420년(세종 2) 수강궁(창경궁) 별전에서 56세로 별세하여 이곳에 묻혔다. 헌릉은 원경왕후가 죽자 현 위치인 광주(廣州)의 대모산을 능지로 선정하였다.
홍살문에서 올려다 보이는 능원은 까마득하다.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돌길을 걷는다. 왼쪽 돌길은 제향을 지낼 때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향로이며, 오른쪽 돌길은 왕이 제향을 올리러 갈 때 다니는 어로다. 향로가 조금 높고 넓어 향로로 걸어가 정자각을 둘러보고 비각을 둘러보았다.
비각은 왕의 행적을 적은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는 건물이다. 구신도비는 임진왜란 때 손상된 것을 1695년(숙종 21)에 다시 세운 것으로 변계량이 찬하였다. 문화재청은 2013년 7월 16일,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했다.
전면에서는 능원으로 오를 수 없고, 헌릉과 인릉 사이의 산책로에서 오라야 한다. 헌릉은 고려 왕조의 현릉과 정릉의 제도를 답습하여 망주석을 제외한 모든 석물을 한 벌씩 갖추어 쌍으로 배치하고 있다. 즉, 봉분을 2기로 하되 난간을 터서 연결시킨 쌍분제이다.
봉분 하단에 병풍석을 두르고. 면석은 와형운문(渦形雲文)을 두르되 중앙에는 각 방위별로 수관인신(獸官人身)의 십이지신상을 새겨 넣었으며, 우석과 면석 하단에는 영지를 조각하였다. 병풍석은 앙련·복련엽을 조각했으며, 그 앞은 낮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
배치된 상설은 곡장 3면, 병풍석 12면, 난간석 10칸, 혼유석 2, 명등석 2, 망주석 1쌍, 문인석 2쌍, 무인석 2쌍, 마석 4쌍, 양석 4쌍, 호석 4쌍 등이 있다.
웅장한 규모로 조선 왕릉 중에 가장 크다고 전해진다. 특히, 세종의 효심을 읽을 수 있는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다. 승하 후 세종의 묘역도 유언대로 한동안 이곳 지역에 조성되어 있었다.
● 헌인릉 산책로
헌인릉 산책로는 헌릉 뒤 대모산 자락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으나 누구나 걷기 편한 길이다. 단풍나무, 소나무 등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어서 상쾌한 기분이 든다. 헌릉과 인릉 사이로 내려오면 산책로는 바로 끝난다.
●인릉
- 조선 제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의 능
인릉은 조선왕조 제23대 순조(1790~1834)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인릉은 헌릉과는 달리 자좌오향(子坐午向)의 동원합봉(同原合封)으로 이루어졌다.
순조는 정조와 수빈 박 씨의 소생으로, 1790년(정조 14) 창경궁 집복헌에서 태어나 바로 원자로 호칭이 정해졌지만, 왕세자 책봉은 11세인 1800년(순조 즉위)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이른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1803년까지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였다. 1804년부터 친정하였는데 1808년부터 1811까지 국정을 주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1834년(순조 34) 경희궁 회상전에서 45세로 승하했으며, 1835년 파주 교하의 장릉 지역 부근에 처음 장사지냈다. 그러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1856년(철종 7) 현 위치로 이장되었으며, 다음 해 순원왕후를 합장하였다.
순원왕후 김씨는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딸로, 1789년(정조 13) 태어났다. 1857년(철종 8) 창덕궁 양심각에서 69세로 별세하여 이곳에 묻혔다. 왕과 왕후는 1899년(광무 3)에 숙황제·숙황후로 추존되었다.
인릉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는 헌릉과 인릉사이 숲기로 난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인릉은 외형상 일반적인 단릉과 같이 혼유석 1좌만 있는 2실로 합장하였다. 석인 조각은 4등신으로 머리가 어깨 위로 나오고 하반신이 더 길어진 형태이다.
능의 상설은 곡장 3면, 난간석 12칸, 혼유석 1, 명등석 1,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 마석 2쌍, 양석 2쌍, 호석 2쌍 등이 있다. 비각의 표석은 천릉(遷陵)했기 때문에 2개가 있다. 한편, 능 입구에 능참봉가가 있다.
헌릉과 인릉은 강력한 왕권으로 나라의 기틀을 잡은 태종과 세도정치에 흔들려가는 사회를 왕권으로 잡지 못한 순조가 함께 잠들어 있는 동시에 그 조성연대가 무려 400년 이상 차이 난다. 그러한 만큼 헌인릉을 둘러보면 조선 전기와 후기 왕릉의 양식을 한곳에서 비교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정보
►주소 :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34(내곡동 1-2449) / 전화 : 02-445-0347
►입장료 : 성인 1,000원, 지역주민 500원, 10인 이상 단체 800원 / 이용 : 오전 9시~오후 6시 30 / 매주 월요일 휴무
►주차 : 가능(무료)
►기타 :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어 헌인릉 중 헌릉의 능상만 매일 11시, 14시, 15시, 16시에 개방하고 있다. 그 외 시간에는 헌릉과 인릉 각각 측면 계단에 올라 멀리서만 보아야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왕릉 지킴이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돌아볼 수 있어 역사기행을 겸한 나들이 코스로 인기다. 음력 설에는 전통 민속놀이마당이 열리며 전주 이씨 대동 종약원에서 해마다 제례를 올리는데 이때 일반인의 관람도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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