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보가(興甫歌)
- 윤제림
먼 나라 새들이
우리나라 하늘 밖으로 날아갑니다
때가 되어서 가는지
살 수 없어 가는지 알 순 없지만
이 나라 찾아들던 길을 되짚어
다른 하늘로
날아갑니다
다치고 병든 새들만 남아서
아직 뜰 수 없는 새들만 남아서
산 깊이 물 깊이 숨어서
날아가는 새들 하늘 끝까지
눈으로 좇아갑니다
빛이여, 형제여
고향 집에 소식이나 전해 달라고
기운 없는 날개를 퍼덕입니다
흥보*를 만나
용케 귀국 길에 오른
베트남 새 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날아갑니다.
- 《그는 걸어서 온다》(2008) 수록
▶시어 풀이
*흥보 : 판소리 <흥보가>에 나오는 마음씨 착하고 우애 있는 아우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우리 나라의 고전인 '흥부가'의 내용을 인용, 외국인 노동자들을 '새'로 비유하여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을 드러낸 작품이다.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산업화되고, 동시에 높은 교육열로 고학력자도 많아지게 되었다. 노동 현장에서 많은 일꾼이 필요해지고, 수요와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는데, 이때 1차 공장 생산업을 담당할 인력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임금이 높은 한국으로 소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상당수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그들 중에는 합법적인 절차가 아닌, 불법 입국으로 체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처우는 그리 좋지 않은 편이 아니었고, 더구나 일하는 과정에서 병을 얻거나 다치는 노동자도 많이 생기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도 많게 되었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서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종결 어미 ‘ㅂ니다’의 경어체를 반복 사용하여 내용상 숙연한 느낌을 자아내고 시의 운율감을 형하고 있으며, ‘흥보가’의 이야기를 내용을 인용하여 외국인 노동자들을 '새'로 비유하여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를 ‘먼 나라 새들’에 비유하여 드러내고 있다. ‘먼 나라 새’는 ‘때가 되어서 가는 지/ 살 수 없어 가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이 떠나온 나라로 되짚어 간다.
2연은 자국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에게 고향 안부를 부탁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떠나지 못하고 여기 남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병들었거나 아직 뜰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땅 깊이 물 깊이’ 숨은 불법체류자들 뿐이다. 이들은 날아가는 새를 눈으로 바라보며 ‘고향 집에 소식이나 전해 달라’고 ‘기운 없는 날개를 퍼덕’인다. ‘기운 없는 날개를 퍼덕인다’는 것은 자포자기의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3연은 안부를 전해 달라는 노동자들의 부탁에 대한 떠나가는 노동자들이 화답하는 내용이다. ‘흥보를 만나 용케 귀국 길에 오른’에서 ‘흥보’는 귀국에 도움을 준 ‘착한 한국인’을 가리키며, 귀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베트남인임이 밝혀진다.
이 시는 우리나라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는 동시에 나아가 그들의 비참한 처지를 비판하고 인간다운 대우를 통하여 인간 존중의 소망을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알려진 바로는, 국내 취업을 위해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수는 2011년 6월로 70만 명을 넘어섰고, 어느 새 이들은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문제는 그중 불법 취업자가 30%가 넘는다고 것이다. 외국인이라는 점과 더불어 불법 체류의 신분까지 더해지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싼 임금에 높은 강도의 업무를 견디고 있다. 따라서 이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단계이다. 제도적 측면, 이들에 대한 인식 부족, 부당한 임금 지급 문제, 의료 지원 등 사회적인 부분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 때에 이 시는 이러한 문제들을 짚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작품 중 인용된 <흥보가(興甫歌)>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로, 전래설화인 <방이설화>를 판소리꾼들이 노래로 부르면서 판소리화한 것이다. 일명 〈박타령〉, 흥부가(興夫歌), 흥부타령이라고도 한다. 욕심 많고 심술궂은 형 놀보와 마음씨 착하고 우애 있는 아우 흥보 사이의 갈등이 주된 내용이다. 놀보는 부자로 살면서 아우까지 내쫓는다. 쫓겨난 흥보는 갖은 고생 끝에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었더니, 박이 열려 그 속에서 온갖 보물이 나와 부자가 되었다. 놀보는 더 부자가 되겠다고 억지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보복을 당한 뒤 개과천선(改過遷善)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판소리 <흥보가>는 고전소설 <흥부전(興夫傳)>, 신소설 <연(燕)의 각(脚)>으로 이어진다.
▲작자 윤제림(1960~ )
시인, 충북 제천 출생. 1987년 《문예중앙》를 통하여 <뿌리 깊은 별들을 위하여> 외 9편의 시로 문단에 등장했다. 시집으로 《삼천리호 자전거》(1988), 《미미의 집》(1990), 《황천반점》(1994), 《그는 걸어서 온다》(2008), 《새의 얼굴》(2014),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2019) 등이 있고, 동시집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가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